오늘날 시크교 공동체는 인도 펀자브를 넘어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케냐 등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디에 정착하든 가장 먼저 세우는 것은 사원인 구르드와라(Gurdwara)이며, 그 다음에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동부엌 랑가르이다. 종교시설과 무료급식소가 함께 세워지는 모습은 다른 종교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독특한 문화이다.
시크교는 국적을 묻지 않고, 피부색을 묻지 않으며, 종교를 묻지 않는다. 누구든지 찾아오면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손을 내민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시크교인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이러한 정신은 세계적인 재난이 닥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지진과 홍수, 태풍, 팬데믹, 난민 사태가 발생하면 시크교 봉사단체들은 이동식 주방을 설치하고 하루 수만 명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의료 지원과 생필품 공급에도 앞장선다. 봉사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신앙인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인도 경제를 이끄는 수많은 시크교 기업인들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운송업과 제조업, 금융과 정보기술 분야에서 성공한 많은 기업들이 사회공헌과 장학사업, 의료봉사에 적극 나서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노동은 신성하며, 부는 나눌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구루 나낙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크교가 오늘날 세계에서 존경받는 이유는 단지 봉사와 나눔 때문만이 아니다. 정직한 노동과 신뢰를 중시하는 신앙은 기업 경영에서도 큰 경쟁력이 되었다. 실제로 인도 경제를 이끄는 수많은 시크교 기업인들은 "돈은 사회를 위해 쓰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철학을 실천해 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말빈더 모한 싱과 시브인더 모한 싱 형제이다. 이들은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란배시 래버래토리를 세계 시장으로 성장시키며 인도 제약산업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의료와 교육 분야에 꾸준히 사회공헌을 펼쳐 시크교의 봉사 정신을 실천하였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오스왈드 조지 메네제스와 함께 성장한 시크교 출신 전문경영인들이 인도의 상용차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운송과 물류, 제조업 분야에서도 시크교 기업인들은 성실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최대 재벌 가운데 하나인 히로우그룹 역시 시크교 가문이 세운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업자인 브리즈모한 랄 문잘은 작은 자전거 부품 회사에서 출발하여 세계 최대 오토바이 기업 가운데 하나를 일구었다. 그는 기업은 이윤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교육과 의료, 장학사업에 막대한 기부를 이어 왔다. 오늘날 ESG 경영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시크교 공동체는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해 온 셈이다.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만모한 싱이다. 경제학자인 그는 인도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에 올랐으며, 1991년 인도의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설계한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외환위기로 흔들리던 인도 경제를 개혁하여 세계적인 성장국가의 기반을 마련했고, 청렴한 공직생활과 검소한 삶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권력보다 책임을, 화려함보다 성실을 선택한 지도자로 기억되며, 이러한 삶의 태도에는 시크교의 정직과 봉사 정신이 깊이 배어 있었다.
국제사회에서도 시크교 지도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캐나다와 영국에서는 시크교 출신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으며, 군과 경찰, 법조계, 학계에서도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앞세우기보다 성실한 노동과 공동체 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시크교의 성공은 결국 특별한 비결 때문이 아니다. 구루 나낙이 가르친 세 가지 원칙, 곧 창조주를 늘 기억하는 삶(Nam Japna), 정직하게 일하는 삶(Kirat Karni), 그리고 얻은 것을 함께 나누는 삶(Vand Chhakna)을 500년 넘게 실천해 온 결과이다. 신앙은 예배당에서 끝나지 않고 기업과 시장, 학교와 병원, 정치와 행정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시크교는 자신의 역사로 증명하였다.
오늘날 생성형 AI와 디지털 혁명은 세계 경제의 모습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도 신뢰와 정직, 봉사와 나눔이라는 가치만큼은 결코 낡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도덕성과 공동체 의식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시크교는 과거의 종교가 아니라 미래 문명이 다시 주목해야 할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인물 가운데도 시크교인은 적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도의 전 총리였던 만모한 싱의 정치철학에는 시크교의 정직과 봉사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기업 경영에서도 시크교 정신은 높이 평가된다.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자산으로 삼으며, 구성원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는 오늘날 세계 경영학이 강조하는 지속가능경영과도 일치한다. 신뢰는 가장 큰 자본이며, 사람을 존중하는 기업만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시크교 공동체는 수백 년 동안 증명해 왔다.
시크교는 또한 자유를 위해 싸운 종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자유는 타인을 억압하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신앙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자유였다. 제9대 구루인 구루 테그 바하두르는 자신의 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는 강제 개종에 맞서 싸우다 순교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종교 자유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전통은 제10대 구루 고빈드 싱에게 이어졌다. 그는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정신을 공동체의 삶으로 만들었다. 시크교에서 칼은 권력을 상징하지 않는다. 정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책임을 상징한다. 그래서 시크교의 용기는 언제나 봉사와 함께 존재한다.
오늘날 인류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 생성형 AI와 로봇, 양자컴퓨터와 바이오 혁명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양심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AI는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고, 로봇은 노동을 대신할 수 있지만 연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크교의 영성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구루 나낙이 강조했던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 문명의 핵심 가치이다. 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봉사는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경쟁은 발전을 가져오지만, 나눔은 문명을 지속시킨다.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정신 역시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는 데 목적을 둔다. 다석 유영모가 강조했던 생명의 연대와, 대종교가 말하는 인간과 하늘의 합일, 불교의 자비와 유교의 인(仁), 도교의 무위자연도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길을 향한다. 시크교 역시 같은 곳을 바라본다.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하나이다. 진리는 사람을 살리고, 정의는 공동체를 세우며, 자유는 서로를 존중할 때 완성된다.
오늘날 세계는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인종과 종교, 이념과 계층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된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시크교는 조용히 말한다. 평화는 거대한 선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한 그릇의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식탁에서 시작된다고. 봉사는 가장 위대한 설교이며, 사랑은 가장 강한 무기라고.
그래서 시크교의 역사는 단순한 종교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문명의 역사이며,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영성의 역사이다. 칼보다 강한 것은 믿음이고, 믿음보다 강한 것은 사랑이며, 사랑보다 오래가는 것은 봉사라는 사실을 시크교는 지난 반천 년 동안 온몸으로 증명해 왔다.
아시아는 수많은 종교를 낳았지만, 시크교만큼 믿음과 행동을 하나로 묶어낸 종교는 드물다. 기도는 노동으로 이어지고, 노동은 나눔으로 이어지며, 나눔은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된다. 이것이 시크교가 오늘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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