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 산업의 역사에서 애플은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중국의 기술 굴기의 가장 큰 조력자를 꼽으라면 애플을 빼놓을 수 없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등의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싸고 대규모 노동력을 보유한 중국에 막대한 제조 물량을 맡겼고, 그 과정에서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구축했다. 단순 조립기지였던 중국은 애플이 엔지니어를 직접 파견해 가르친 기술에 힘입어 정밀 가공과 자동화, 부품 공급망 관리 능력을 축적했고 이는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IT 기업들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애플이 중국을 기술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삼성과 LG는 오랫동안 애플의 핵심 부품 공급업체였지만 애플의 '중국 사랑'은 계속됐고, 심지어 이 과정에서 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들의 주요 기술이 애플 공급망을 통해 중국으로 유출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제 애플이 또 다른 중국 굴기를 돕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바로 반도체다. 이번 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로부터 메모리 칩을 공급받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회사 모두 미 국방부가 중국군과 연계됐다고 판단해 블랙리스트에 올린 기업들로, 애플은 이를 위해 미국 정부에 로비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메모리 공급난 속에 메모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가진 기업으로, 애플 공급망에 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만약 CXMT와 YMTC가 애플 공급망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신뢰도는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산 메모리를 채택하는 데 심리적 장벽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같은 애플의 움직임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고 중국 반도체 기업을 제재하며 중국의 반도체 및 AI 굴기를 막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정작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애플이 중국 반도체 업체와 손을 잡는다면 미국의 전략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이에 그동안 미국 정부와 의회도 중국과 애플의 관계에 대해 계속 경고 섞인 우려를 표해 왔다.
물론 애플의 선택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다. 부품 비용 상승에 처한 기업이 새로운 부품 공급처를 찾는 것은 당연한 판단이다. 그러나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선택이 결국 세계 정세에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온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격차를 바탕으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주도해 왔지만 AI 붐 속에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 고객들은 새로운 공급처를 찾게 된다. 그 대상이 중국 기업이라면, 중국 메모리 산업에는 절호의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희토류와 배터리, 드론 등 각종 산업에서 막강한 카드를 갖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 기술력까지 갖게 된다면 이는 한국과 전 세계 산업망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애플은 이미 지난 20년간에 걸친 대규모 중국 투자를 통해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과거 아이폰 공급망이 중국 제조업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듯, 메모리 공급망을 재편한다면 중국 반도체 산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러모로 한국으로서도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