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의 교육&시선] 배재고 야구부 사태가 드러낸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

<교육&시선>은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현장, 학령인구 감소, 요동치는 대입 제도 속에 초중등·고등교육의 이슈를 진단하고, 당면한 교육 현안·과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또 한편으론 지속 가능한 대안을 탐색합니다. 때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도 담겠습니다.
29일 배재고가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사진배재고
29일 배재고가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사진=배재고]

서울 배재고 야구부의 ‘지역 비하 응원’ 사태를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갈수록 확산되며, 진영 간의 대립과 법적 고발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의 이른바 ‘스타벅스 가야지’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고교 스포츠 현장으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양상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경고음이 도처에서 울리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조롱과 혐오 문화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극단적인 조롱과 혐오의 문화가 이제는 순수해야 할 청소년들의 일상과 학교 운동부 현장까지 깊숙이 침투한 것. 

지난 6월 2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벌어진 배재고와 광주제일고 응원전에서 나온 사건을 복기해보자. 배재고 선수들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구호를 조직적으로 연호했다. 이는 지난 5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데이’, ‘책상의 탁’ 등 현대사의 비극을 모욕하는 문구로 마케팅을 펼쳐 파문을 일으켰던 스타벅스코리아 사태를 악의적으로 차용한 행위다. 당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탱크데이’ 이벤트를 진행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경질하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개까지 숙였던 엄중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기업 총수가 직접 역사인식 부족을 자책하며 수습하려 했던 그 참담한 실책이, 불과 한 달여 만에 고교 야구 선수들의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 팀을 조롱하기 위한 ‘공격 무기’로 부활한 것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에 ‘6개월 대회 출전 정지’라는 전례 없는 중징계를 내렸고 당장 예정된 경기는 몰수패 처리됐다. 학교 측은 부랴부랴 사과문을 올렸으나 이마저도 생성형 AI로 급조한 흔적인 워터마크가 발견되며 대중의 공분과 불신을 더 키웠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일부 학생들의 우발적인 ‘일탈 행위’를 넘어, 미래의 주역이 될 선수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가치를 완전히 저버린 상징적 사건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원칙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아마추어 야구를 총괄하는 기구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6대 정책과 24개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클린베이스볼 구현이라는 정책 실현을 위해 “스포츠 인권 존중 및 각종 예방 교육 실시”를 주요 실천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학생 선수들도 공동체적 가치와 인권이 중요하다는 핵심적인 윤리 강령이기도 하다. 경기 승패보다 선행되어야 할 가치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정한 경쟁, 즉 ‘스포츠맨십’이라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스포츠에서 인권 존중은 이제 국내를 넘어 인종 차별과 혐오 표현에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적용하는 전 세계 스포츠계의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흐름이다. 

그러나 미래의 국가대표와 프로선수를 꿈꾸는 고등학교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이 엄격한 규정과 글로벌 스탠다드를 단숨에 짓밟았다. 비록 법조계 일각에서는 고등학생들의 철없는 구호를 섣불리 사법적 잣대로 단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역사적 아픔을 이용해 허위 사실과 조롱을 양산하는 행위 자체가 5·18 특별법(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입법 취지와 우리 사회의 중대한 합의를 흔드는 위험한 행태라는 비판만큼은 피하기 어렵다. 그 저변에는 역사 왜곡과 혐오를 배설하며 배타적 쾌감을 얻는 일베 특유의 극우 문화가 도사리고 있다. 

과거 ‘일베’라는 특정 플랫폼에 갇혀 있던 이 조롱의 문서는 이제 유튜브 숏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 10대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아이들은 그것이 특정 지역과 유가족에게 얼마나 깊은 대못을 박는 행위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단지 재미있고 자극적인 ‘놀이’로 소비한다. 혐오 표현이 일종의 또래 집단 내 유행이자 놀이문화로 정착하면서, 청소년들의 죄책감과 도덕적 방어선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되는 조롱과 왜곡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교육적 차원의 전방위적 대안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매체 이해 능력)’ 교육의 전면적인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보의 출처가 신뢰할 만한 제도권 언론이나 공인된 학술 자료인지 확인하는 ‘교차 검증’ 습관도 길러줘야 한다. 

특히 자극적인 제목이나 조작된 이미지, 맥락을 거세한 짜깁기 영상에 현혹되지 않도록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을 분리해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 훈련이 공교육 내에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 내에서는 부적절한 언행과 혐오 표현에 대한 강력한 징계 기준을 확립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대형 포털과 유튜브, 커뮤니티 플랫폼 기업들이 AI 기반의 혐오 표현 필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자율 규제 책임을 대폭 강화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이번 배재고 야구부 사태에 대해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범부처 차원의 디지털 유해 환경 개선과 교육적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승리를 향한 집념이 스포츠맨십의 실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땀 흘려 경쟁해야 할 그라운드 위에서, 아직 보호받고 배워야 할 고등학교 선수들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와 관련된 ‘5·18 특별법 위반’을 운운해야 하는 우리 교육 현실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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