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은 엄두도 못 내고 주식시장에는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한국의 20·30세대. 이들에게 희귀 포켓몬 카드 한 장은 위안이자, 어렵사리 손에 넣는 사치품이 됐다.
서울 도심 용산의 한 매장 앞. 오전 10시 30분 개점을 한참 앞두고 수십, 이내 수백 명의 수집가가 줄을 섰다.
접수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키오스크 태블릿에는 63개 팀이 대기를 걸었다. 사람들은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며 초조하게 발을 굴렀고, 보안요원들이 줄을 정리했다.
줄을 선 이들은 대부분 젊었다. 남녀 비율은 엇비슷했고, 더러 40대도, 외국인도 몇몇 섞여 있었다. 모인 이유는 하나였다. 리셀러보다 먼저 정가에 포켓몬 카드를 사기 위해서다.
이제 이런 일은 당연하게 되었다. 2023년 1월 출시된 10팩 구성 제품 '브이스타 유니버스' 한 박스의 원래 판매가는 5만원. 그러나 한국 수집가들이 즐겨 쓰는 가격비교 사이트 컬렉토리에서 이 제품은 현재 약 13만원에 거래된다. 남은 재고가 그만큼 적다는 방증이다.
포켓몬코리아 매장의 한 매니저는 인터뷰는 거절하면서도 한마디는 보탰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줄을 서기 시작한 건 한두 달쯤 된 것 같다."
시점은 포켓몬이 올해 전 세계에서 기념하는 30주년과 맞물린다.
수집가들에게 왜 줄을 서느냐고 물으면, 돈이 첫 대답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열풍이 일기 전인 3년쯤 전부터 수집을 시작한 김준형씨(29)는 "어릴 때 포켓몬을 보고 자랐는데, 어른이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생기니 좋아했던 추억과 캐릭터에 비로소 돈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팩을 뜯는 순간의 무작위성은 그 자체로 달콤한 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 도파민이 즐겁다."
좀 더 잔잔한 매력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김은제씨(26)는 "내가 귀여운 걸 좋아하고 여자친구도 좋아하다 보니, 같이 앉아 카드를 뜯는 게 그냥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경제 논리를 가까이서 들여다보기 위해 직접 리셀 매장에서 두 박스를 사봤다. 정식 매장은 너무 붐벼서다. 박스를 열어 내용물의 가치를 따져봤다.
들어간 돈은 약 11만원. 정가 6만원의 두 배가량이었다.
포켓몬 캐릭터가 그려진 호일·종이 카드가 나왔지만 성과는 빈약했다. 가장 희귀한 카드, 즉 스페셜 일러스트 카드를 다 합쳐도 리셀가로 3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리셀 생태계는 몇 가지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간다. 가격 책정은 컬렉토리 같은 사이트와 대형 네이버 카페 거래 게시판에서 최근 판매가를 교차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모든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도 생겼다. 바로 '포테크'다. '포켓몬'과 개인 재테크를 뜻하는 속어를 합친 말이다.
매매는 몇몇 채널에서 이뤄진다. 동네 거래 앱 당근에서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흥정한 뒤 직접 만나고, 리셀 플랫폼 크림이나 여러 온라인몰에서는 택배로 카드를 부친다.
위험은 어디서나 같다. 김준형씨는 "중고로 살 때 무서운 건 카드가 가짜거나 상태가 안 좋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안전을 더하려 비공식 카드 거래 매장을 찾는 수집가도 있다. 하지만 진짜 관건은 '그레이딩'이다. 카드 이미지가 얼마나 가운데에 잡혔는지, 모서리에 찍힘은 없는지, 카드가 얼마나 평평하고 단단하게 놓이는지 등을 평가하는 작업이다.
다만 그레이딩에는 돈이 든다. 그래서 그 자체로 도박이다. 결과가 나쁘면 추가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김준형씨도 카드를 팔아본 적이 있지만, 이익을 노린 건 아니었다. 그는 "당근에 중복 카드를 팔긴 했는데 돈 때문은 아니었다. 종류별로 하나씩만 남기고 나머지를 팔아 새 카드를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지출은 쌓인다. 그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잘한 구매를 빼고도 100만원 넘게 썼다고 추산했다.
김은제씨는 중고 거래를 포함해 자신의 총지출을 250만원가량으로 잡았다.
기념 주기는 대략 5년 주기로 돌아가는 듯하다.
25주년 때 한국에는 프로모션 카드와 굿즈가 담긴 '골든박스'가 나왔다. 원래 가격은 20만원. 그러나 지금은 크림과 당근 같은 플랫폼에서 약 132만원에 거래된다. 원가의 6배가 넘는다.
올해 30주년 제품은 아직 출시 전이다. 9월 출시 예정이며, 아마존에서는 이미 예약 주문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광풍은 한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미국에서 리셀 열풍은 오래도록 문화적 농담거리였다. 온라인에서 풍자됐고, '포켓몬 카드 암표상'이라는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쇼핑객들은 월마트 재입고 시간에 맞춰 줄을 서고, 카드 팩 절도는 뉴스가 된다. 일본과 싱가포르 매장들은 소위 말하는 '되팔이'를 막으려 아예 계산대에서 부스터 박스를 갈라 개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5월 1일 자체적인 충격을 겪었다. 30주년 '포켓몬 메가 페스타 2026' 기간에 무료로 나눠주는 잉어킹 프로모션 카드 한 장을 쫓아, 약 4만명이 서울 성수동 골목으로 몰려든 것이다.
인파가 워낙 심각해 오전 11시 전에 경찰이 출동했고, 일대 모바일 데이터가 끊겼으며, 주최 측은 안전을 이유로 증정을 취소했다. 그날 카드는 공식적으로 주인을 찾지 못했지만, 몇 시간 만에 리셀 플랫폼 번개장터에는 약 10만원에서 38만원에 가까운 매물이 올라왔다. 한 판매자는 가격을 추궁받자, 이베이의 더 높은 가격을 들며 자신이 오히려 손해 보는 쪽이라고 우겼다.
◇ 왜 이렇게 뜨거운가
그렇다면 왜 지금 한국에서 이 물결이 정점에 이르고 있는가. 돈 때문인가, 아니면 각광받는 아이콘 피카츄 때문인가.
수집가들은 신규 유입을 먼저 꼽는다.
김준형씨는 "포켓몬이 30주년을 맞아 행사가 많아졌고, 이제 인터넷 방송하는 사람마다 포켓몬 카드 콘텐츠를 한다"며 "10대부터 30대까지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고 말했다.
1996년 원작 게임을 하며 자란 세대는 이제 30·40대가 됐다. 가처분 소득과 향수에 약한 마음을 함께 지닌 세대다.
연구자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경험이 불안과 외로움을 실제로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짚는다. 세상이 불안정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이 어린 시절 취미로 돌아가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명예교수는 "포켓몬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랐고, 이 카드들을 매개로 오래전 좋아했던 것에 다시 자신을 던져 넣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우표 같은 걸 모았지만, 그때는 그걸 팔 수 있는 중고 거래 시장이나 플랫폼이 거의 없었다"며 "취미 인구 저변이 넓어지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을 맺어주기가 쉬워지면서 이런 매매가 훨씬 더 활발하고 매끄럽게 이뤄진다. 그 점도 수요가 커진 이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 트레이딩 카드 시장은 약 13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며, 2030년대 중반까지 대략 두 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베이와 스톡엑스는 모두 카드 매출이 전년 대비 45%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분석가들은 그 매력을 향수, 대체 자산 사냥, 그리고 추격의 순수한 짜릿함이 뒤섞인 것으로 설명한다. 돈이 흔하던 시절 운동화와 시계 붐을 이끈 것과 같은 조합이며, 유동성이 마르면 그만큼 가파르게 뒤집힐 수 있는 조합이기도 하다.
투기꾼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김준형씨는 차익을 노려 카드를 되파는 이들을 두고 "좋게 보지 않는다"며 "이건 마니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화였는데 돈 보고 뛰어든 사람들이 사재기와 가격 급등을 다 일으키고 있다. 5년마다 반복되는데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취약함이 곧 함정이다. 업계 전망은 카드 지출이 가처분 소득을 바짝 따라가며, 경기 침체나 인플레이션 국면이 시장을 빠르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호황을 부풀리는 데 일조하는 불안한 분위기가, 결국 그 호황을 터뜨릴 수도 있는 분위기인 셈이다.
당장 한국은 확실히 팽창 국면에 있다. 한국 부스터 팩 정가는 6월 들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50% 올랐다. 회사는 원자재·물류비 상승을 이유로 들었다. 재판매는 보통 품귀가 시작된 뒤 3~6개월이 지나서야 나온다. 텅 빈 매대 걸이를 바라보는 구매자에게는 작은 위안일 뿐이다.
다시 용산의 줄로 돌아가면, 셈법은 어떤 시장 차트보다 단순했다. 인파는 새롭고, 카드는 귀하며, 그럼에도 모두가 그것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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