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젠슨 황의 파격과 소탈함이 필요한 한국 기업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얼마 전 서울을 방문한 젠슨 황은 마치 인기 록스타와 같이 흥미롭고 다채로운 4일간의 행보를 보였다. AI 혁명의 중심에 선 엔비디아(NVIDIA)의 창업자이자 CEO인 그는 특유의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하며, PC방을 찾아 프로 e스포츠 선수들을 만났다. 63세의 이 디지털 혁명가는 한국의 기업인들과도 만나 치킨과 삼겹살을 곁들여 맥주와 소주를 나누며 격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비교적 차분하고 절제된 한국 기업인의 이미지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젠슨 황의 파격적이고 소탈한 모습은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로 인해 그가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영 인파가 몰렸다.
 
어떻게 보면 젠슨 황의 이러한 친근한 스킨십과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는 엔비디어의 폭발적인 성장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디지털 기술을 평범한 언어로 전달하며 대중과의 교감을 넓혔고 이로 인해 회사의 존재감을 키워왔다. 그 결과 1993년 소규모 그래픽 칩 설계 회사로 출발한 엔비디아는 오늘날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넘는 세계 최대 상장기업으로 성장하며 AI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개척한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현재 AI 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하드웨어로, 이러한 성공의 중심에 있다.
 
젠슨 황의 개인적 브랜드 파워는 이러한 기술적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파트너, 투자자, 고객과 깊이 교감하는 그의 능력은 엔비디아의 중요한 전략 자산이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술 전문가 억만장자로 남기보다, 과도한 형식이나 의전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그는 복잡한 기술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며, 비전문가도 AI와 디지털 기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단순한 반도체 기업을 넘어, 인류 기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젠슨 황의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은 종종 애플의 스티브 잡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와 비교된다. 그의 검은 가죽 재킷은 잡스의 터틀넥, 저커버그의 후드티처럼 전통적인 정장 문화에 대한 실리콘밸리식 도전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들 리더는 모두 강력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바탕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이용자와 투자자, 지지자를 끌어들이는 데 능하다.
 
그러나 대만 출신 이민자인 젠슨 황은 서구의 기술 리더들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는 특히 비즈니스에서 인간적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한국과 중국 등 동양권에서 더욱 공감을 얻는 방식이다. 실제로 그는 한국 기업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이는 기업간 협력 관계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엔비디아는 GPU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동시에 젠슨 황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관계는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선 개인적 친분으로까지 발전된 모습이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나누는 ‘깐부’의 관계로 진전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인들은 젠슨 황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태원, 이재용회장과 같은 기업인들은 대체로 감정 표현이나 신체적 친밀감에서 절제된 모습을 보이며, 대중과의 비공식적 소통에도 비교적 신중하다. 공개 발언 역시 조심스러운 편이며,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도 소극적이다. 정장과 넥타이를 갖춘 단정한 복장은 여전히 권위와 격식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젠슨 황이나 머스크, 저커버그와 달리 한국 대기업 총수들은 대부분 창업자가 아니라 3세, 4세로 이어진 후계자들이다. 이들은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기업 문화 속에서 성장하며, 눈에 띄기보다 조용히 있는 것이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지는 환경에서 훈련받아 왔다. 또한 부패나 정경유착 문제로 오랜 기간 대중의 감시를 받아온 만큼,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중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 지배구조가 점차 개선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스타일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 최근 재래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SK의 최태원 회장, 신세계 정용진 회장 등 많은 CEO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와 같은 기업의 창업자 출신 리더들 역시 기존 재벌 총수들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개인의 아우라와 카리스마만으로 기업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젠슨 황이 아무리 가죽 재킷을 자주 입었다 해도, AI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면 엔비디아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프레젠테이션에도 아이폰이 실패했다면 애플이 세계적 기업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첨단 디지털 기술 기업들은 이미 세계 투자자와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최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단지 한국 기업들에게 모자라는 것은, 젠슨 황처럼 소통하고 공감하며 영감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일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