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국제 기구 유치와 진출이 절실한 한국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국제관계, 국제기구, 공공외교 등 주로 다자주의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요즘에는 학생들 앞에서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든다. 국제 무대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전 세계 다자주의 퇴조로 인해 점차 그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으로 인해 유엔 (UN), 세계은행 (World Bank) 등 다자주의에 입각한 주요 국제기구가 축소되고 위축되는 상황이 되어 더욱 그렇다. 간혹 학생들의 눈초리에서 졸업 후 원하는 이 분야에서 과연 취업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읽을 수 있다.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그러나 노력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어학 실력을 쌓고, 경험을 축적하고, 상위 학위 (최소한 석사) 취득을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젊은이들의 기회를 넓히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다. 국제 기구 및 국제 무대 진출을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Junior Professional Officer (JPO) 과정을 확대하여 정부 주도 국제기구 (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 진출을 도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JPO 과정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놓아줄 필요가 있다. 외교부나 한국국제협력단 (KOICA), 정부 출연 연구 기관 등에서 인턴십을 통해 기본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준 후에 이러한 경력을 통해 국제기구에 지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약직으로 시작하여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국제협력단을 거쳐 유엔기발기구 (UNDP), 기후환경부를 거쳐 유엔환경계획 (UNEP). 보건복지부를 거쳐 세계보건기구 (WHO) 등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은 아예 국제기구를 한국에 유치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을 들여 2013년 인천 송도에 유치한 녹색기후기금 (GCF) 같은 성공 사례를 또 만드는 것이다. 당시 독일 등과 치열한 경쟁 끝에 유치한 GCF는 한국에 위치한 가장 대규모 국제기구다. 선진국 자금으로 개도국의 기후 적응을 지원하는 이 기구에는 현재 많은 한국인들이 좋은 조건 하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밖에 국제기구 본부로는 규모는 작지만 국제백신기구 (IVI)가 있다. 본부는 아니지만 국제기구 지역 사무소나 산하 기관도 한국에 다수 존재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센터 (UNOSD),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UN ESCAP) 동북아 지역 본부, 유엔 거버넌스 센터 (UNPOG)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얼마 전에는 세계은행이 송도에 글로벌 디지털 지식 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은행 유일의 디지털 전환 관련 연구 기관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소규모 조직이라 취업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설립을 추진 중인 글로벌 AI 허브는 성공한다면 획기적인 성과가 될 것이다. UN 기구로 계획되어 있는 이 조직은 AI 관련 네트워크 플랫폼의 형태를 띠며 AI 윤리, 정책, 글로벌 규범 등을 다루게 될 것이다. 날로 증대되는 AI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UN의 많은 기구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조직이 예상된다. 현재 유엔개발기구, 세계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ILO), 국제이주기구 (IOM) 등이 한국 정부와 협력 의사를 밝혀 왔다. UN의 승인에 대비하여 현재 경기도 오산시, 서울 용산구 등 여러 지자체가 후보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유치가 쉽지만은 않다. 현재 싱가폴,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교력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유치 홍보 활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국제 외교 무대 경쟁에서 한국은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 부산 세계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고 세계무역기구 (WTO), 국제노동기구 수장 선거에 도전해서 모두 실패한 바 있다. UN 분담금을 9번째로 많이 내는 국가로서 UN이나 기타 국제기구에 진출한 고위직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과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을 준다. 얼마 전까지도 반기문 UN 사무총장, 이종욱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미국 국적이지만 김용 세계은행 총재,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 (ICC) 소장, 백진현 국제해양법재판소 (ITLOS) 소장 등이 국제 무대에서 큰 활약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일부 초급, 중급직에 소수의 한국인만이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백진현 전 소장이 국제사법재판소 (ICJ) 재판관 후보로 출마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최고 권위 기관의 재판관으로서 선출된다면 개인 뿐 아니라 국가에도 큰 보탬이 되는 자리이다. 현재 15명의 재판관이 있고 그 중 소장은 일본인인데 이는 일본에게는 외교적으로 엄청난 자산이 된다.

이 재판관 자리는 올해 말 선거에서 결정될 예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모두에서 절대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 현재 다수의 외국 후보가 출마하여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소장 경력으로 백 전 소장의 개인적인 능력은 충분히 인정받은 상태이나 역시 정부의 외교력 없이는 당선이 어렵다. 결국 국제 기구 진출이나 유치나 모든 면에 있어 정부의 외교 역량이 절대적이다. 한국의 최근의 실적을 볼 때 안타깝게 이에 대해서는 크게 자신할 수 없다. 국제 무대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우울한 소식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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