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상호 감독 "'군체', AI 알고리즘에서 출발…개별성 무력의 공포 떠올려"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가 5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며 극장가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으로 먼저 주목받은 영화는 개봉 이후 관객들의 선택을 받으며 꾸준히 열기를 더하는 중이다. '부산행' '반도'를 거치며 K-좀비 장르의 외연을 넓혀온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와 진화하는 군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선택을 다시 그려냈다. 칸에서 시작된 관심이 극장으로 이어진 지금, '군체'는 연상호 감독의 장르적 감각이 여전히 현재형임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좀비물을 만들자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최규석 작가와 주제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AI 알고리즘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지옥'을 하면서 풀리지 않았던 숙제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집단성 중에서도 무엇을 지금 공포스럽게 느끼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보편적 사고의 합의라는 것이 개별성을 굉장히 무력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특이한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불편함의 원천이 아닌가 싶었어요. 이것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좀비로 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시나리오가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개미와 군체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연 감독은 리서치 과정에서 개미의 생태와 집단지성의 개념을 접했고 이후 '군체' 속 감염자들의 움직임과 재부팅되는 듯한 동작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안무팀과 많은 논의를 거쳤다고 했다.

"집단지성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해봤던 것 같아요. 거기서 개미의 생태를 보고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는 이야기를 봤고 개미의 생태를 중심으로 리서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앤트밀과도 연결됐고 재부팅되는 과정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게 됐죠. 대본에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쓰여 있지만 그것을 시각화해야 하는 작업들이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안무팀과 이야기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안무팀이 거의 군체화돼서 좀비의 마음으로 몸의 움직임을 만든 것 같아요."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군체' 속 감염자들은 기존 좀비물의 익숙한 움직임과는 다른 기괴한 동작으로 관객에게 인상을 남긴다. 연 감독은 이들에게 상징적인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것이 완벽하게 설명되는 동작이라기보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기세에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주 상징적인 동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신체 강탈자의 침입' 같은 영화에서 외계인들이 인간을 발견했을 때 하는 유명한 제스처가 있잖아요. 기계적이면서도 기괴하고 약간 웃기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 기묘함은 어떤 기세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시그니처가 되는 동작을 만들어내는 건 기세 싸움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안무팀에게도 과감하게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전지현의 캐스팅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화제 중 하나였다. 연 감독은 전지현이 자신이 해온 장르적 색깔에 관심을 가질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가 장르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의 동시다발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해왔던 작품의 색깔들이 있잖아요. 저는 전지현 배우가 그런 류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어요. 과연 이 작품을 할까 생각했죠. 그런데 의외로 전지현 배우가 즐겨 보는 작품들도 특별한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미국 드라마도 특이한 것들을 많이 보시고요. 장르성에 대한 이해도 확실히 있으신 편이었고, 대본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셨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이런 장르물에 대한 관심이 되게 높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사진=쇼박스]

전지현이 맡은 권세정은 강한 액션보다는 상황을 읽고 판단하는 지능형 캐릭터에 가깝다. 연 감독은 전지현의 시원시원한 외형과 움직임이 그런 캐릭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봤다. 동시에 언젠가 본격적인 액션 영화에서도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주인공이 지능 캐릭터다 보니 액션을 마음대로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단 외형이 시원시원한 게 있죠. 그냥 걷는 것도 성큼성큼 걷는 느낌이 있어서 지능 캐릭터로서 지루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음에는 본격적인 액션 영화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잘하시고 피지컬 자체가 액션에 잘 맞는 느낌이 있어요."

구교환에 대해서는 "비범한 배우"라는 표현을 썼다. 연 감독은 구교환이 기존 배우들의 연기 방식과는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구교환 배우는 비범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기존 배우들의 연기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고, 그걸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능력이 대단히 있는 편이에요. 교환 배우가 워낙 영화 매니아이기도 해서 그런 면에서 잘 통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독특한 영화들을 많이 알고 있고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 방식에 대한 이해도 높아요. 서영철 같은 인물은 이상해 보이는 지점도 많은데 이 역할이 왜 이래야 하는지에 대한 무언가가 직관적으로 서 있는 것 같았어요."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군체'는 속도감 있는 체험형 장르 영화에 가깝다. 연 감독은 처음 대본이 길었지만, 결과적으로 인물 서사를 덜어내고 상황 중심으로 가야 했다고 했다. 

"처음 대본을 썼을 때 168페이지 정도였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것을 영화로 보여줬을 때는 속도감 있게 체험형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물 서사에 대한 것들을 덜어내고 상황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관계성이 더 중요해졌고 관계성 자체가 캐릭터가 됐어요. 관객이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관계성이 중요해서 특이한 페어를 많이 만들려고 했습니다."

좀비라는 장르를 향한 연 감독의 질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는 좀비를 한 번 설정하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좀비를 환자로 봐야 하는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혼란이 더 커졌고 그 지점에서 상상력이 확장된다고 말했다.

"좀비는 한 번 설정하면 의문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초반에 좀비를 진압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잖아요. 이 좀비를 환자로 봐야 하나 아니면 쏴 죽여야 하나 헷갈리죠.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난 이후에는 더 윤리적으로 헷갈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거기서 상상력이 뻗어나가요. 좀비는 무엇인가 좀비가 진짜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여러 가지가 파생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연상호 감독 [사진=쇼박스]

쉴 틈 없이 작품을 내놓는 창작 방식에 대해서도 물었다. 연 감독은 지친다는 느낌보다 요즘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영화와 OTT, 국내외 프로젝트의 경계가 흐려진 산업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혼란일 수 있지만, 그는 오히려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친다는 느낌은 별로 받은 적이 없어요. 재미있어요. 요즘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요즘 영화인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규정지어지지 않은 산업의 형태잖아요. 예전에는 영화면 영화만 하면 됐는데 이제 OTT도 있고 복잡하죠. 저도 뭘 해야 되지 하다가 작년에 '얼굴'을 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거나 막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재미있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작업들을 중심으로 채워가고 싶다고도 했다. 흥행이나 규모에만 연연하기보다 독특한 방식과 새로운 제작 방식을 실험해보겠다는 마음이다.

"지난 10년과는 다르게 앞으로의 10년은 안 해봤던 것 중심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굳이 사이즈나 흥행에 연연하지 말고 계속 이상한 짓을 많이 해봐야겠다, 독특한 걸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시기를 후회 없이 잘 보낼 것 같아요. 요새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게 되게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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