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Spiritual Asia) ⑤] 베다와 천부경, 그리고 대종교...AI 시대에 다시 만나는 한민족의 하늘 정신

21세기 인류는 다시 가장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며,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욱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지난 4편 동안 우리는 인도의 힌두교를 통해 아시아 영성의 거대한 뿌리를 살펴보았다. 베다(Veda)는 우주의 근원을 노래했고, 우파니샤드(Upanishad)는 인간 내면의 신성을 탐구했으며,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는 삶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는 길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한민족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한민족 역시 수천 년 동안 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그리고 그 답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으로 이어지는 한국 고유의 영성 전통 속에 남아 있다. 특히 근대에 들어 이 정신을 되살린 종교가 바로 대종교(大倧敎)이다.
 
오늘날 대종교를 단순히 하나의 종교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대종교는 한민족의 시원(始原) 정신을 복원하려는 문화운동이자 민족정신 운동이었다. 1909년 음력 1월 15일, 애국지사인 나철 선생은 단군교를 중광하고 그 이름을 대종교로 바꾸었다. 당시 대한제국은 국권 상실의 벼랑 끝에 서 있었고 일본 제국주의는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까지 말살하려 하고 있었다.
 
나철 선생은 총칼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민족의 혼이라고 보았다. 그는 정치적 독립 이전에 정신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단군을 단순한 건국 시조가 아니라 한민족 정신의 상징으로 다시 세웠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되찾아 주려 했던 것이다.
 
대종교의 중심 경전은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다. 그 가운데 천부경은 모두 81자로 이루어진 짧은 경전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주의 생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 자연과 생명의 원리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천부경의 정확한 성립 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대종교와 민족종교계에서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한민족의 정신 유산으로 존중해 왔다.
 
천부경의 첫 문장은 매우 유명하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시작이 없는 하나라는 뜻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하나에서 비롯되고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힌두교 우파니샤드가 말하는 브라만(Brahman)의 사상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 우파니샤드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결국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천부경은 이어서 말한다.
"일석삼극무진본(一析三極無盡本)"
 
하나는 셋으로 나뉘고 그 셋이 무한한 만물의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우주관과도 연결된다. 환인은 하늘의 근원적 존재(하나님)를 상징한다. 환웅은 하늘의 뜻을 품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존재이다.예컨대 예수같은 존재다. 그리고 단군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며 홍익인간의 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쉽게 말해 47대 단군 까지 계승되어온 것을 보면, 천주교의 교황같은 존재라 할 수있다.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하늘과 자연, 인간이 하나의 질서 속에 연결되어 있다는 한민족 고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이는 인도의 브라만과 아트만 사상처럼 인간 안에도 하늘의 본성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 영성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도의 영성이 개인의 깨달음과 해탈(Moksha)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면, 한국 영성은 공동체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더욱 강조했다.
 
그 핵심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이 짧은 말은 한민족 정신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완성한다.
 
삼일신고는 인간 안에 신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참전계경은 인간이 지켜야 할 삶의 윤리와 덕목을 말한다. 그리고 홍익인간은 그 모든 가르침의 목적을 설명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영성은 하늘을 향하되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정신이다.
 
실제로 대종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정신적 중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종교계에서는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가 중심 역할을 했지만 대종교 역시 전국과 만주 지역에서 독립선언과 항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특히 만주와 북간도 지역의 독립군 조직과 대종교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청산리대첩의 영웅인 김좌진 장군은 대종교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독립군 양성과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또한 홍범도 장군 역시 대종교 세력과 교류하며 민족정신을 공유했다.독립군들에게 대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총을 들고 싸우기 전에 자신들이 단군의 후손이며 자유로운 민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정신적 기반이었다.
 
김구 선생 역시 독립운동 과정에서 대종교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으며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정신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백범은 민족의 혼과 역사정신을 강조했고, 이러한 점에서 대종교가 추구한 정신세계와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돌이켜보면 대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를 잃은 시대에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한 정신운동이었다. 환인으로 상징되는 하늘의 근원, 환웅으로 상징되는 천지인의 조화, 단군으로 상징되는 홍익인간의 이상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총칼보다 강한 정신적 힘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고 있다.그러나 인간의 양심과 사랑, 책임과 희생까지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과 대종교의 정신은 다시 살아난다. 그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질문이다. 5천 년 전 인도의 현자들이 베다를 통해 던졌던 질문과, 한민족의 선인들이 천부경을 통해 던졌던 질문은 결국 같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AI 시대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영혼을 묻는 오래된 지혜는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시 천부경을 읽고, 대종교를 돌아보며, 한민족의 하늘 정신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이다. 진리와 정의와 자유는 언제나 기술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진리의 탐구는 수천 년 전 베다와 천부경에서 시작되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챗GPT
[이미지=챗GPT]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