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내고향여자축구단이 남기고 간 것들  

 
1
[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5월 20일 저녁 7시 시간당 40mm의 우중 속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공방전을 직관하던 중 평소와는 다른 혼종(混種)적 감정과 마주했다. 그날의 내적 격동은 어디로부터 왔고 어떻게 개인의 감각에까지 이르렀을까? 이 질문이 분단문제를 연구하는 내게는 중요했다.

한동안 국내외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짧은 방남은 분단이라는 거대한 질병을 안고 사는 우리사회의 다면적 감정을 수면위로 드러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쳐 표현하자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 클럽팀의 방한 경기라 하겠다. 이미 지난 1월 한국의 수원과 중국 우한이 AFC측에 AWCL(아시아여자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결승전 유치를 신청해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3월말 수원FC위민이 8강전에서 우한 장다를 4대0으로 완파한 덕분에, 남북 클럽간 준결승전의 수원개최가 성사되었다. 한달후 캐나다 밴쿠버에서 김일국 북한축구협회장을 만난 AFC 셰이크 살만 회장의 막후 노력도 주효했다. 언론에 내고향팀의 준결승 참가 엠바고가 풀린 5월 4일 이후 평양에서 우승 카퍼레이드 소식이 5월 27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전해지기까지 그들이 가져간 우승컵 대신 남겨진 것들은 무엇일까?

북한 체육선수단이 남한을 찾은 것은 2018년 12월 인천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대회 이후 7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간 한반도 내외 정세는 요동쳤다. 2019년 2월 세간의 기대를 모았던 북미 하노이회담이 결렬되었고, 팬데믹 여파가 한반도를 포함한 전세계를 덮쳤다. 이듬해 6월 16일,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비핵화 협상의 빗장을 굳게 걸어잠궜다. 2022년 2월 러-우 전쟁 발발 이후 북한은 대러 밀착행보에 주력했고 쿠르스크 파병도 주저하지 않았다. 2023년 말 김정은은 남과 북을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면서 대한민국과 한국이 본격 호명되기 시작했다. 한반도 이북지역에서 적대적 ‘조한’관계의 서막이 올랐다. 2024년 이듬해 남쪽에서 날아온 대북전단에 맞서 북이 연거푸 오물풍선을 내려보내면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남북간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었다. 접경지역민들이 오롯이 눈물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2025년 1월, 트럼프 제2기 행정부의 등장 직후 관세전쟁과 기술패권 경쟁이 국가별 화두로 떠올랐다. 국제질서의 기존 문법이 달라지는 찰나, 한국인들은 2년 일찍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화해의 손짓에도 북한의 냉담한 태도는 지속되었다. 언론이 AWCL 수원 대회에 내고향팀의 출전을 의심하던 시각, 총 35명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중국을 거처 인천공항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선수단을 환영하는 일부 실향민 단체의 환호성만이 입국장을 매웠지만 ‘적대적 국가’의 원정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려야 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그들은 일절 호응하지 않았다. 때는 이미 남북간 국가관계를 북의 개정헌법에 반영한 뒤였다.

국내 언론이 대회 성사여부를 불투명하게 본 이유로 북한의 강고한 적대적 국가기조와 대남 절연 의지, 과거 도쿄하계올림픽의 보이콧 사례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내고향팀은 왜 타향에 왔나? 5월 27일자 노동신문은 “우승의 금메달로 주체조선의 위용을 떨치고 우리의 공화국기를 자랑스럽게 휘날린 내고향팀 여자축구선수들이 화려한 꽃장식을 한 버스를 타고 평양국제비행장을 출발하였다”는 대목에 힌트가 있다. 준결승과 결승전 직후 내고향선수단은 인공기를 가장 먼저 찾았다. 김정은체제 이후 정상국가 지향과정에서 사회주의대가정은 우리국가제일주의로 확장되었고 인공기는 국가의 제1상징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승후보인 내고향팀의 전력으로 적지에서 수원과 도쿄팀을 꺽고 금의환향하는 모습은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판단했을 것이다. 반면 AWCL 2025~2026 규정에 따르면 토너먼트 단계에서의 기권은 최소 10만달러의 벌금과 AFC 주관대회 한시즌 이상 출전 자격 제한으로 이어질 소지도 다분했다. 도쿄올림픽 보이콧으로 베이징올림픽 출전 제한과 국제대회 경쟁력 약화를 경험한 북한에게 기권으로 인한 페널티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며, U-17 여자아시안컵에서 동생들이 우승컵을 가지고 돌아온 분위기 속에, 기권은 찬물을 끼얹는 결정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김정은 시기의 체육정책은 '체육열풍', '체육강국건설', '체육선진국'의 목표로 정리된다. 내고향선수단의 리일유 감독 역시 한국기자의 질문에 후비 지도체계(국가주도 전문화된 유소년 육성체계)를 북한여자축구 실력의 비결로 꼽았는데 이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설립을 통한 지도체계 강화, 엘리트선수 양성을 위한 체육인 처우 개선이라는 체육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제한적이지만 북한에게 체육의 국제화와 연령대, 클럽팀 차원의 국제대회 성과는 우리국가제일주의와 정상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선전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북한의 내고향선수단은 ‘가지 않을 명분’과 ‘가야만 하는 실리’ 사이에서 고민 끝에 수원행을 택했다. 대회를 불과 2주 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이 임박한 결정은 우리에게 평양 내고향선수단을 하나의 클럽팀으로 맞이하기에 충분한 여건을 제공하진 못했다. 언론은 7년 5개월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었고, 내고향선수단의 호텔과 훈련장 등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내고향팀의 국가명을 북측으로 언급하여 답변을 거부당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내고향선수단과 같은 호텔로 배정된 수원FC위민선수단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타 숙소로 이동하는 불편을 겪었다. 우리정부는 민간단체의 공동응원을 위해 준결승과 결승전 티켓을 지원했다. 북한의 적대기조를 환대로 수용했다.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아이스하키단일팀 해단식에서 눈물을 훔치며 재회를 약속했던 또래 여자선수들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순간 내재되어 있던 정치적 민족적 수사들이 작동했다. 우중속 혈투를 바라보는 이들의 설레임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안쓰러움과 같은 내적 격동과 혼종적 감정도 이에 기반한 것이리라. 관중들은 양팀 선수들이 쓰러질때마다 애처로운 감탄사를 연발했다. 실향민들의 고향팀에 대한 응원은 공개적이었지만 양해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수원FC위민이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홈어드밴티지의 이점을 충분히 살렸는가에 대해서는 클럽대항전 위에 얹혀진 내셔널리즘의 가능성과 한계 면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북한 당국이 공들여 육성한 대표급 클럽선수들을 적대국인 한국에 보낸 것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경기장과 훈련여건, 숙소와 음식, 훈련, 행정, 안전, 지원 시스템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에 기반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정치상황과는 별개로 조선여권과 방남증명서의 병존가능성도 확인하며 한반도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간 양측 선수단의 행정 절차적 선례도 남겼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공동의 경기규칙 아래 경쟁하던 양팀 클럽 선수들의 모습은 남과 북이 지향해야 할 이정표였다. 준결승 경기 직후 수원FC위민의 17번 이유진 선수와 내고향여자축구단 20번 김경영 선수의 악수장면이 냉담한 남북관계 속에 오랫동안 회자될 것 같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