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축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으로 대표되던 전통 제조업 중심의 성장 구조 위에 새로운 산업 축이 얹히는 모습이다. 인공지능(AI), 원자력, 방위산업이 그 주인공이다. 이 세 분야는 단순한 유망 산업을 넘어 글로벌 질서 재편과 맞물린 전략 산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기술과 안보, 에너지라는 국가 핵심 의제가 한 축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의미다.
AI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의 도구가 아니다.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까지 연결되는 AI 생태계는 국가 단위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놓고 충돌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선택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반도체 경쟁력에 기반한 AI 인프라 구축은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기회이자 동시에 놓쳐서는 안 될 카드다.
원전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간헐성과 계통 안정성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 틈을 메울 수 있는 기저전원으로서 원전의 역할은 다시 커지고 있다. 여기에 체코, 폴란드 등으로 이어지는 원전 수출 기대감까지 더해지면서 원전 산업은 단순한 에너지 산업을 넘어 수출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방산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의 수혜 산업이다.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무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산 무기의 경쟁력도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 빠른 납기, 안정적인 생산 역량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다. 방산은 더 이상 ‘보조 산업’이 아니라 수출과 기술 축적을 동시에 이끄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 세 축이 아직 ‘선언적 기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산업 간 연결과 생태계 구축이 뒤따르지 않으면 단발성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AI는 전력과 데이터, 반도체가 결합된 인프라 산업이고, 원전은 정책 일관성과 금융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 장기 산업이다. 방산 역시 외교와 수출 금융, 기술 이전 전략이 맞물려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결국 세 산업 모두 ‘국가 전략’이라는 공통 분모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이 새로운 성장축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대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AI·원전·방산은 단일 산업의 성과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의 전환을 요구한다. 인력 양성, 규제 혁신, 재정·금융 지원까지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의 변화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시험대다.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되고 기술과 안보가 결합되는 시대에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10년의 성장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 AI·원전·방산이라는 세 축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속도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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