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야 한다." 요즘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처지를 이보다 더 적확하게 설명하는 말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북중러 연대는 갈수록 공고해지는 반면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미국 중심의 동맹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맞선 전략적 공조 강화를 다시 한 번 선언했다. 양국은 이미 군사·경제·외교 전반에서 밀착을 이어왔지만, 최근에는 그 결속의 깊이와 범위가 한층 확대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시 주석의 북한 방문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북중러 3자 연대는 갈수록 힘을 더해가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에 맞서야 할 한미일 공조 체제가 이전만큼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수는 단연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피아를 가리지 않고, 아니 오히려 우방 및 동맹국들에게 더욱 가혹한 외교 행보를 펼쳐왔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관세 위협, 예측 불가능한 외교 행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동맹국들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올해 들어서는 중동 전쟁의 늪에 빠진 가운데 자체 국력의 소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과 일본을 비판한 가운데 우리만 빠졌다고 마냥 안도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번 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방한이 의미를 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축에만 의존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이 스스로 생존의 안전판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일 관계에는 여전히 깊은 역사적 상처와 감정의 골이 존재한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냉혹하다. 북중러가 공동의 전략적 이해관계 아래 빠르게 결속하는 동안, 한국과 일본이 과거 문제에만 발목 잡혀 있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우리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미래 산업 경쟁에서도 한일 협력은 필수에 가깝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공급망, 에너지 안보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양국은 경쟁 관계인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구조다. 중국이 기술 굴기를 앞세워 글로벌 공급망 지배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따로 움직여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는 위기의 순간 연대한 국가들이 살아남았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블록화 시대로 향하고 있다. 북중러가 빠르게 진영 결속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마저 예전처럼 절대적으로 믿기 어려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 역시 더 이상 감정과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미국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한일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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