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싸게 만들어 부자들만 촛불을 쓰게 하겠다."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상용화하며 남긴 말이다. 당시 그의 발언은 단순한 기술 낙관론이 아니었다. 전기가 산업과 문명을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선언에 가까웠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전력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원이 됐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글로벌 산업 질서는 AI와 데이터센터, 반도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확산과 산업 전기화 영향으로 향후 세계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와 AI 패권 경쟁이 결국 ‘전력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생산라인 확대와 데이터센터 증설, 전기차 보급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중장기 전력 수요 급증은 사실상 예고된 상태다. 전력 공급 안정성이 곧 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수립한다는 방침이지만 중동 전쟁 장기화라는 변수로 예정대로 추진될지는 불투명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해상 운송로다. 우리나라도 LNG 수입의 20.4%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실적인 가스 수급계획 수립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처 간 정책 혼선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를 고려하면 LNG 역할을 당분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부처별 우선순위가 엇갈리면서 장기 가스 수급계획 조율이 지연되고 있다는 평가다. 에너지 정책 컨트롤타워가 흐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재생에너지는 반드시 확대해야 하지만 간헐성이라는 한계가 있다. 원전 역시 신규 건설과 계통 연계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상당 기간 LNG가 전력 시스템의 핵심 축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최근 주요국들이 원전 확대와 LNG 확보 경쟁을 동시에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산업 현장의 안정성을 단기간에 모두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역시 현실적인 에너지 안보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만 선언 중심 정책에 머물러 있을 여유는 없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단순히 반도체를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반도체 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하고 있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산업은 이미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방향을 정하지 못한 모습이다. 첨단산업 시대에 걸맞은 에너지 컨트롤타워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선언 중심 논쟁을 넘어 산업계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장기 에너지 청사진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AI 시대 패권 경쟁은 결국 누가 더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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