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파업 아닌 공존을 선택해야 할 때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파업 아닌 공존을 선택해야 할 때
 
미국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공장은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앨라배마 혹은 조지아에 있다. 세계적인 완성차 기업들이 모여있는 디트로이트가 아닌, 남부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디트로이트의 쇠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디트로이트는 미국 제조업의 심장이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러스트 벨트(Rust Belt)라고 불리면서 산업 몰락의 상징이 돼 버렸다.
 
 
1
[Detroit, Michigan 1920s.]
1
[Detroit, Michigan 2020s]


 
러스트 벨트로 몰락한 배경 중 하나는 노사갈등이었다. 2023년 저명한 학술지 Journal of Political Economy(JPE)에 게재된 한 논문은 러스트 벨트의 쇠퇴 원인 중 '노사갈등'을 핵심으로 짚어내어 경제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해외 경쟁(특히 중국발 충격)'이나 '기술 변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노사갈등’도 산업도시 몰락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높은 임금을 추구하거나 파업이 반복되었고, 신규 투자 감소 및 생산성 둔화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새로운 거점을 찾아 나섰고, 기존의 거점은 몰락하게 되었다.
 
2026년 5월 한국도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 투자자들은 역대급 코스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즐길 새도 없이, 중대한 과제를 만났다. 역대급 성적표를 받아 든 학생이 주말까지 제출해야 할 기말과제에 응하느라 기뻐할 새도 없듯이 말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2026년 5월 21일 총파업에 들어갈 것을 예고하면서, 노사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재용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김민석 국무총리는 “파업 고집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입장을 명확히 했다.
 
본 고는 노조의 주장이 맞는지, 사측의 주장이 맞는지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논쟁, 갈등, 분열이 아니라, 공존, 상생, 지속가능성으로 방향을 잡아야 함을 제청하기 위함이다. 노동자에게 성과급을 포함한 적절한 근로 조건을 마련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기업이 성장 도약할 수 있는 R&D 지출 등의 투자자금 확보도 필요하다. 다만,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파업이나 생산 차질 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이 디트로이트의 다음 사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가 갖는 한국경제의 의미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로 불리는 한국에 반도체는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다. 반도체는 총수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한국의 단연 1위 수출 품목이다. 더욱이 반도체가 없이 수출이 가능한 품목은 단 하나도 없다. 자동차, 일반기계, 선박, 자동차부품, 무선통신기기, 디스플레이, 컴퓨터, 가전, 이차전지 등의 품목에는 반도체가 부품으로 들어가고, 석유제품이나 석유화학 등의 품목에도 생산공정에 반도체가 모두 들어간다. 정부가 지정한 15대 주요 수출 품목은 전체 수출의 77.8%를 차지하는데 어느 하나도 반도체 없이는 가능한 수출이 없다. 반도체가 없다면, 필자가 이 글을 쓸 수도, 독자가 이 글을 읽을 수도 없는 것이다.
 
 
1
[한국의 15대 주요 품목별 수출액 및 비중/자료 : 산업통상부, 한국무역협회]



현재 상황을 기술하는 데 그칠 수 없다. 반도체의 의미는 한국경제의 미래에서 찾을 수 있다. 말 그대로 AI 시대 아닌가? 피지컬 AI 시대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식탁 위에 쌀이 빠지지 않듯, 미래 산업에 반도체가 빠질 수 없다. 세계 주요국들이 기술 패권 전쟁을 벌이고, 데이터센터를 경쟁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HBM을 비롯한 최고 사양의 반도체 기술과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외교 및 통상적으로도 협상력을 갖게 해줌을 의미한다.
 
삼성전자가 갖는 한국경제의 의미

삼성전자는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다. 한국의 120만 개의 법인 중 하나가 아니다. 3,500개의 대기업 중 하나가 아니다. 1969년 36명의 직원으로 설립한 이후,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국민의 관심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기술 거인으로 도약했다. 12만 명 이상의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국내 협력사만 약 1,700개에 달한다. 이는 곧 삼성전자의 실적은 경영진 혼자서 이뤄낸 것도 아니고, 노동자만의 성과도 아니다. 경영진, 기술 인력, 노동자, 투자자, 협력사, 정부, 국민 모두가 이뤄낸 성과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추이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

 
 
1
[삼성전자 영업이익 추이/ 자료 삼성전자] 
 
1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 자료 : 한국거래소(2026년 5월 15일)
주 :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우)를, SK하이닉스는 SK스퀘어 시가총액을 합한 기준]

 
반도체 생산 차질시 불거질 리스크

첫째, 천문학적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반도체는 수백 개의 초정밀 공정이 연결되어 있고, 진공상태, 온도, 미세 물질 등의 조건이 어느 한 공정에서 틀어지면 불량품이 발생한다. 생산라인이 멈추면 웨이퍼는 전량 폐기해야 한다. 이 경우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은 100조 원이다. 하루에 발생하는 반도체 공정 차질이 1조 원에 달하고, 재가동하는 데에 수개월 걸린다.
 
둘째, 미래 반도체 시장을 뺏길 수 있다. 공급망 공백은 경쟁사들에 점유하고 있던 시장을 내어주게 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반도체 품질과 안정적인 납기를 요구한다. 삼성전자의 파업 여부를 누구보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파업이 반복되는 구조는 영구적인 시장을 상실케 한다. 경쟁사들은 이를 기회로 삼을 것이다. 마이크론과 같은 DRAM 시장의 3위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MTC)와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Nanya Technology),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이 바짝 추격 중이다. 특히, 중국 창신메모리는 지난해 11월 초당 8000MT/s 속도의 DDR5 메모리 제품을 공개한 데 이어 현재 대규모 양산에 들어간 상황이다. 급성장하는 미래 시장수요를 잃으면, 한국경제의 미래를 잃는 것이다.
 
 
1
[세계 DRAM 반도체 기업별 시장점유율,자료 : Counterpoint Research Memory Tracker and Forecast, Q4 2025]



셋째, 직접적 손실이 천문학적이라면, 간접적 손실은 그 이상이다. 삼성전자의 파업은 곧 1,700개 공급업체와 각 사 임직원, 그 지역경제에까지 거미줄처럼 연쇄 충격을 주게 된다. 또한, 반도체는 완제품이 아니고 부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 생산 차질은 국내 대부분의 주력 산업의 생산 차질로 이어진다. 전 산업 생산 차질은 전 산업 수출 차질로 연결된다. 한국은 반도체 혹은 반도체가 들어가는 품목을 수출하는 나라 아닌가? 한편,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자산가치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우)의 시가총액이 코스피의 28.1%를 차지한다. 주가 하락이 가져올 파급 영향을 기술하려면 책 한 권을 다시 시작해야 할 정도다.
 
공존이라는 이름의 성과급 정책 대응

첫째, 소모적 갈등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타협을 대전제로 삼아야 한다. 법이 정해놓은 적법한 쟁의와 파업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노동자의 기본권이 국민 전체의 공공복리에 우선할 수는 없다.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함을 논하고자 한다. 파업은 파업을 낳는다. 삼성전자 노조 파업은 수많은 산업에 걸쳐 대규모 파업으로 전개될 수 있고, 이는 공존이 아닌 공멸로 향할 수 있다.
 
둘째, 외부 중재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 있다. 성과급 산정 과정에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중재 시스템을 도입하여 노사 간 불신을 해소해 나갈 수 있다. 노조 측이 요구하는 성과 보상 체계의 투명화 등에 관한 안건도 외부 중재 기구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노사 양측이 중재 기구의 판단을 따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일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셋째, 공동 목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산업에 걸쳐 미래 산업 수요에 맞게 대응하기 위해 적정 투자액이 요구된다. 영업이익의 흐름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신규 투자는 필요하다. 마치, 농부가 씨앗을 심듯이 말이다. 더욱이, 경쟁사들의 기술 추격을 고려할 때 이는 공존을 위해 절대적인 과제다. 따라서, 장기 목표 R&D 투자액을 설정하고, 이를 전제로 한 이익의 배분 등을 논의해야만 한다. 성과급의 일부를 주식으로 제공하는 것도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자사주 매입은 일부 주가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해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관계와도 맞고, 임직원들의 공동 목표 의식을 함양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