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방사 전 법무실장 "담화문 보는 순간 위헌성 의심...포고령 난해했다"

  •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재판, 문상원 전 수방사 법무실장 증인 출석

  • "국회 출동 지시에 위헌성 의심...부하들 말이 맞을 것"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참모인 법무실장이 담화문을 보는 순간 위헌성을 의심했다고 증언했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이현경 부장판사)에서는 내란중요업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사령관의 공판이 열렸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문상원 중령(전 수방사 법무실장·현 육군검찰단 강원지역검찰단장)은 2024년 12월 3일 자신이 겪었던 비상계엄 전후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우선 문 중령은 증인 출석에 앞서 자신의 상관이었던 이 전 사령관과의 대면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증인석과 피고인석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해 문 중령이 이 전 사령관을 마주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 중령은 가림막이 설치된 걸 확인한 뒤 그제서야 증언을 시작했다.

특검 측 신문에서 문 중령은 계엄 당시 상황에 대해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비상소집 통보를 받았고 부대를 향하는 택시 안에서 포털 언론사 뉴스 등을 통해 대통령 담화문과 계엄 포고령 1호를 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담화문 내용은 입법 독재와 반국가 행위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법조인으로서 이를 접했을 때 위헌·위법성을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특히 국회와 지방의회의 정치활동을 일체 금지한 포고령 1항에 대해서 "삼권분립 원칙상 국회의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취지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매우 난해하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이후 부대에 도착한 문 중령은 지휘통제실로 향했지만, 그곳에서 이 전 사령관을 만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문 중령은 당시 부대에 이미 국회로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현장이 극도로 어수선했다고 설명했다. 문 중령은 "육군본부와 합참, 그리고 용산 중 어디서 지시가 내려오는지조차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특검 측은 수방사 병력의 국회 투입이 적법한 작전 범위 내에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이 전 사령관 측과 공방을 벌였다. 특검팀은 문 중령에게 수방사의 일반적인 업무 매뉴얼이나 하이브리드전(군사적 조치와 비군사적 조치를 적절히 섞어 활용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개념) 대비 훈련 내용에 국회를 봉쇄하거나 의원들을 체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에 문 중령은 "대규모 병력 침투나 살상 무기 대응 등 수방사 매뉴얼 중 국회에 병력을 보낸다는 내용은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계엄 상황에서 수방사가 방첩사를 지원해 합동수사나 인원 체포를 돕는다는 내용이 있었냐는 질문에도 "기억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이 전 사령관 측은 문 중령을 상대로 수방사의 임무가 서울 내 주요 시설의 테러 대응 등에 치중되어 있으며, 법무실장은 주로 징계나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에 작전 용어나 구체적 상황에는 밝지 못하다고 추궁했다. 이에 문 중령은 "법률이 포함된 용어라면 전문가로서 확인해가며 조언을 드리는 것이 임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전 사령관의 변호인은 조성현 전 수방사 1경비단장 등이 헌법재판소나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에 대해서도 "이 전 사령관은 지휘통제실을 지키라는 참모장의 만류를 뿌리칠 정도로 현장 관리에 신경을 썼으며, 의원 체포 지시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조 전 단장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 중령은 증언을 통해 조 전 단장의 증언에 힘을 실어줬다. 문 중령은 "조 전 단장은 부하들을 친가족처럼 생각하는 분"이라며 "당시 (국회에 출동했던) 차 안에 같이 있었던 부하들의 말이 맞을 것이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문 중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경남 마산 출신임에도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석할 당시 착용했던 넥타이를 자신에게 물려준 일화를 설명하며 "아버지는 1980년 5월 광주가 있었기에 1987년 6월의 우리가 안전하게 시위하며 직선제를 쟁취할 수 있었다"며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돕는 것이다. 이번 재판이 우리 민주주의에 한 줄기 빛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재판부는 향후 조 단장 등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증인 신문과 증거 조사를 통해 이 전 사령관의 내란 실행 가담 여부를 최종 판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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