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 '짱구' 22일 개봉 [사진=영화 '짱구' 스틸컷]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대사와 표정으로 남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꾸만 다시 재생된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바람'이 그렇다. 극장 안의 흥행 수치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았지만, IPTV와 VOD 등을 통해 '비공식 천만'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하나의 현상이 된 작품이다. 영화 '바람'의 세계관을 확장한 '짱구'(감독 정우·오성호)는 그 오래된 기억 속 인물을 16년 만에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단순히 향수의 힘에 기대기보다, 성장이 멈춘 듯한 청춘의 지독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교복을 벗고 서울로 올라온 짱구가 마주하는 것은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길고 질긴 버팀의 시간이다. 꿈을 접지 못한 채 오늘을 견디고 또 내일을 향해 줄을 서야 했던 청춘의 현실이 영화의 주요한 동력이 된다.
2010년, 배우가 되겠다는 '바람' 하나로 무작정 상경한 부산 촌놈 짱구(정우 분). 전기세도 못 내고 라면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티는 구차한 서울살이지만, 고향 친구들 앞에서는 서울말 섞인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려 애쓴다. 룸메이트 동생 깡냉이(조범규 분)와 부대끼며 오디션장을 전전하는 짱구에게 삶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끊임없는 낙방과 재도전의 연속이다.
영화 '바람'이 그러했듯, '짱구' 역시 배우 정우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서사의 중심을 잡는다. 그의 청춘 한 페이지를 엿보는 듯한 감각은 실제 정우를 이끌어온 굵직한 작품들의 오디션 장면을 통과하며 더욱 생생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정우가 이 영화의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객은 마치 오랜 친구인 '짱구'의 도전기를 곁에서 지켜보듯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동화된다. 단순히 캐릭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가장 찬란하고 초라했던 시간을 스크린 위에 정직하게 펼쳐 놓는 정우의 연기는 관객과 강력한 유대를 형성한다.
영화 '짱구' 22일 개봉 [사진=영화 '짱구' 스틸컷]
정우를 중심으로 흐르지만 이러한 생동감은 짱구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특히 짱구와 짱재(신승호 분), 깡냉이가 만들어내는 티키타카는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우리 주변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혹은 우리 무리 속에 꼭 한 명쯤 있었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부산이라는 공간의 질감을 선명하게 만든다. 속칭 '짜배이(가짜)'가 아닌, 진짜 부산 사람들이 그리는 생생한 면면과 부산 곳곳의 풍광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다. 배우들의 날 것 그대로의 연기와 부산의 밤공기가 맞물려 완성된 사실성은 관객을 그 시절의 분위기 속으로 단숨에 데려다 놓는다.
다만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짱구와 로맨스를 그리는 민희(정수정 분)는 전형적인 '남자들의 로망'처럼 그려지는데 관계를 풀어가는 문법이 지금의 감각과는 다소 거리감 있게 다가온다. 영화가 힘을 얻는 지점이 짱구의 배우 도전기와 그 고군분투, 그리고 친구들과의 생활감 있는 호흡에 있는 만큼 그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남는다.
그럼에도 '짱구'는 여전히 웃기고, 짠하며, 끝내 뜨겁다. 인물들의 진심이 곳곳에 박혀 있어 관객을 끝내 이해시키고야 말기 때문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극 중 대사처럼 영화는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섣부른 위로 대신 묵묵히 동행하고자 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성장통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짱구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역시 자신의 지난 계절을 다독이게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오른 뒤에도 짱구의 서툰 진심과 부산의 밤공기가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는다. 4월 22일 개봉. 러닝타임은 95분이고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