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이 인도에서 던진 한마디는 단순한 투자 선언이 아니다. “현지기업이 되겠다는 자세로 진출했다”는 말에는 한국 기업의 미래 전략이 압축돼 있다. 수출로 성장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제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생산하고 연구하고 경쟁해야 한다. 이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을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과 경제인 오찬은 이 흐름을 분명히 보여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한국 기업의 애로를 직접 듣겠다고 했고 전담 창구 설치까지 제안했다. 한국 정부도 이에 호응했다. 정부가 길을 열고 기업이 그 길로 들어가는 그림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재용 회장의 발언은 방향이 분명하다. 단순히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과 생산을 함께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제품을 만들고 현지에서 기술을 쌓겠다는 뜻이다. 이는 ‘수출 기업’에서 ‘현지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과거 한국 기업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해외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이 전략은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었다.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규제와 관세가 높아졌다. 현지 생산과 고용,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제 밖에서 파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야 시장이 열린다.
인도는 그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시장 규모가 크다. 동시에 자국 산업 보호 의지도 강하다. 외국 기업이 성공하려면 단순 진출로는 부족하다. 현지 경제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생산과 고용, 기술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재용 회장의 전략은 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오해가 생긴다. 인도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곧 한 나라에 집중하는 전략이냐는 질문이다. 그렇지 않다. 지금 글로벌 기업의 방향은 ‘한 나라 집중’이 아니라 ‘여러 나라 분산 속 깊은 진입’이다. 중국에 의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인도와 동남아, 미국 등으로 축을 나누는 방식이다. 각 지역에 들어가되 얕게가 아니라 깊게 들어간다. 이것이 새로운 분산 전략이다.
즉 인도 투자는 집중이 아니라 분산의 한 축이다. 한 곳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나눠 뿌리를 내리는 방식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지화와 리스크 관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반대다. 분산된 현지화가 리스크를 줄인다.
정부 역할에 대한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현지기업이 되려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인도처럼 규제와 행정 권한이 강한 시장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기업이 현지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과 정부가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서로 다른 역할이다.
속도와 준비의 문제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인도 시장은 빠르게 움직인다.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그렇다고 준비 없이 들어가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요구된다. 해결 방법은 단계적 접근이다.
먼저 들어가야 한다. 작게 시작하고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 그 다음에 투자 규모를 키우고 연구개발을 확대해야 한다. 한 번에 완성된 형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면서 완성하는 방식이다. 속도와 준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빠른 진입과 지속적인 보완이다.
이재용 회장의 전략은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삼성은 이미 인도에서 생산 기반을 갖췄다. 이제 연구개발까지 확대하려 한다. 단계를 밟아온 것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옮긴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확장했다. 이것이 현실적인 현지화 방식이다.
다른 기업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인도에 대규모 연구개발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포스코는 제철소를 추진 중이다. HD현대 역시 조선소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단순 진출이 아니라 현지에서 산업을 함께 만드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 기업 전체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수출 중심 전략은 한계에 도달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둘째, 한 국가에 의존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여러 지역에 나눠 진입해야 한다. 셋째, 속도와 준비를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 늦으면 기회를 잃고, 서두르면 실패한다.
결국 글로벌 경쟁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단순한 비용 경쟁이 아니라 위치와 관계, 기술이 함께 작용한다. 기업은 더 많은 것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의 발언은 그 변화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현지기업이 되겠다”는 말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다. 생존 조건이다. 한국 기업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음 10년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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