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와 항공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내년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 의무화를 앞둔 국내 정유업계의 대응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가뜩이나 설비 투자와 원료 확보 여력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기존 항공유 수급 대응에 집중하면서 SAF 투자는 후순위로 밀리는 분위기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정유사들은 기존 정제설비 일부를 활용하는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SAF를 소량 생산 중이지만 기존 설비를 활용한 제한적 대응에 불과해 의무화 확대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동발 원유 공급 불안 대응이 급한 상황이라 SAF 등 중장기 투자 분야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프로세싱 방식은 전용 설비 대비 수율이 낮아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결국 전용 생산시설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투자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연산 30만t 규모 SAF 전용 설비 구축에 약 1조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
중동 전쟁 발발 후 정제마진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정유사 수익 구조가 더 불안해진 것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유가 국면에서 확보한 원유가 향후 유가 하락 시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 때문에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SAF 사업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처지다.
정부도 SAF 확대를 위해서는 정유사들의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점은 강조하면서도 현재 업계에 투자 여력이 없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SAF는 아직 초기 시장으로 일반 항공유 대비 최대 5배 이상 가격이 높은 상황"이라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산량 확대를 통한 단가 절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전용 생산시설 확충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업계 투자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동향을 보면 국내 열악한 환경이 더욱 도드라진다. 싱가포르는 거대 공장 유치로, 미국은 세금으로, 일본은 국산화 기금으로 SAF 설비 구축에 앞서가고 있지만 한국은 상업화 단계 진입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2023년 확장을 완료해 연간 100만t의 SAF를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공장을 가동 중이다. 미국의 경우 연간 400억 달러(약 55조원) 이상의 청정에너지 예산 중 상당 부분이 SAF에 배정돼 있다. 일본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3400억엔(약 3조원) 이상의 펀드와 기금을 조성했다.
상병인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국내 정유산업은 정부 규제와 보호 속에서 형성된 구조적 특성상 변화 대응이 상대적으로 느리다"며 "글로벌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지만 국내에서는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어 투자·전환이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진이나 기술진에서는 SAF 전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경영진은 시장 불확실성을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결국 국내 수요를 자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해 해외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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