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은 본래 예외적 수단이다. 기준은 단순하다. 지금 당장 집행하지 않으면 더 큰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가다.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그 명분이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의 추경이 그에 준하는 긴급성을 갖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면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타이밍이 의심받는 순간, 정책의 정당성은 무너지고 재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빚 없는 추경’이라는 정부의 설명도 재검증이 필요하다. 초과 세수를 근거로 들고 있지만, 그 상당 부분이 반도체 등 변동성이 큰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재정의 기본은 분명하다. 일시적 호황을 구조적 여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현재의 재원처럼 앞당겨 쓰는 순간,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전가된다. ‘빚이 없다’는 말은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어도, 경제적 실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야당이 제기하는 ‘소비형 추경’ 비판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단기적인 소비 진작은 경기의 체온을 잠시 올릴 수는 있지만,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물론 민생이 어려울 때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쓰임새다. 재정은 소비를 자극하는 도구가 아니라, 구조를 개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 예산을 둘러싼 이른바 ‘셰셰 추경’ 논란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정책의 효과를 따져야 할 자리에서 특정 국가를 둘러싼 정치적 프레임이 논쟁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은 외화를 창출하는 산업인 만큼 시장 논리에 따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영역이다.
특히 일부에서 제기된 ‘중국인 관광객 1인당 지원’ 논란의 경우, 정부는 해당 내용이 이번 추경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어 사업 간 혼선이나 해석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방이 이어진다면, 정책 논쟁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책 논쟁의 최소 조건은 사실의 일치다. 이 선이 무너지면 국회의 예산 심의는 정책 결정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소음으로 전락한다.
지금 국회가 집중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우리 선박 사태는 에너지와 공급망, 안보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재정은 이런 구조적 위험에 대비하고 경제의 버티는 힘을 키우는 데 쓰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논쟁은 여전히 단기 지출과 정쟁에 머물러 있다.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써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추경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아무 방식으로나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명확하다. 긴급성이 입증돼야 하고, 재원은 지속 가능해야 하며, 지출은 구조 개선으로 이어져야 하고, 논쟁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이 네 가지가 무너지는 순간, 추경은 정책이 아니라 정치가 된다.
이대로라면 재정은 국가 운영의 마지막 방어선이 아니라 선거를 위한 기술로 전락하게 된다. 그 비용은 언젠가 반드시 청구된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늘 국민과 다음 세대의 몫이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