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이다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이다.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썼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겨울이 끝난 자리에서 생명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일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잔인하다. 봄은 늘 재생의 계절로 불리지만, 실은 상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 4월, 세계는 그 오래된 문장 앞에 서있다. 

이란과 그 주변에서는 전쟁의 불길이 국경을 넘어 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 4년째를 지나며 도시와 전력망, 병원과 주택이 여전히 표적이 되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전선의 뉴스가 아니다. 집을 잃는 일이고, 가족을 잃는 일이고, 전기가 끊기고 연료가 막혀 밥 짓는 일조차 불안해지는 일이다. 

숫자는 그 참상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유엔 인권감시단(HRMMU)에 따르면 2025년 한 해에만 우크라이나 민간인 2,514명이 숨지고 1만 2,142명이 다쳤다. 2024년보다 31% 늘어난 수치다. 장거리 무기와 드론 공격이 확대되면서 도시 전역에서 민간인 피해가 커졌고, 전력과 필수 인프라 파괴가 일상이 됐다. 4월 3일에도 러시아의 대규모 주간 공습이 이어졌다. 민간인이 죽었고, 주거·행정시설이 무너졌고, 키이우 인근 수의병원에서는 동물 수십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사람만 해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전체를 무너뜨린다.

중동의 숫자는 더 혼란스럽다. 그 혼란 자체가 전쟁의 본질이다. 로이터의 3월 31일 집계 기준으로, 레바논에서는 1,368명 이상이 숨졌다. 이스라엘에서는 19명이 사망했고, 이라크·쿠웨이트·바레인·오만·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도 사망자가 이어졌다. 이란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현장 접근이 제한된 탓에 집계가 크게 갈린다. 적십자·적신월은 최소 1,900명 사망, 2만 명 부상으로 보고했고, 인권단체 HRANA는 3,500명 안팎까지 추산한다.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전쟁이 집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전장의 바깥에 있다. 차량 2부제, 전시 추경, 에너지 비상대응 같은 논의가 오가지만, 동북아는 아직 폭격 아래 있지 않다. 안도할 일은 아니다.  포탄의 직격은 피하고 있을지 몰라도, 유가와 환율, 물가와 물류의 충격에서는 결코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동의 충격은 아시아 전체에 미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 원유·콘덴세이트의 84%, LNG의 83%가 아시아 시장으로 향했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가 가장 큰 노출국들이다. 전 세계 LNG 거래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지난다.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서울의 주유소 가격과 동남아의 비료값, 남아시아의 전력난이 한 줄로 이어진다. 중동의 해협은 지역 분쟁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생명선이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다. 이미 동남아에서는 연료보조금 확대, 예산 절감, 연료 전환 같은 비상처방이 등장하고 있다. 위기의 순서는 대체로 비슷하다. 에너지 충격이 오고, 물가를 밀어 올리고, 정부가 보조금과 규제로 틀어막다가 재정이 흔들리고, 끝내 식량과 사회 안정의 문제로 번진다. 1970년대 오일쇼크,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7~08년 식량위기가 모두 그런 식으로 번졌다. 이번에도 다르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연료가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다. 출근길 버스 배차가 흔들리고, 어선이 바다에 못 나가고, 냉장 물류비가 오르고, 비료값이 올라 밥상 물가가 자극된다. 누군가는 기사 한 줄로 "에너지 위기"라고 부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집을 잃는 속도, 끼니를 걱정하는 빈도, 하루치 생계를 포기하는 횟수로 나타난다. 전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도달한다.

그 잔혹한 봄에, 인간은 전혀 다른 장면도 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인 우주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I 우주비행사들이 4월 3일 공개한 첫 지구 사진에는 푸른 행성과 오로라, 황도광이 함께 담겨 있었다. 사령관 리드 와이즈먼은 지구를 북극에서 남극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고 했고, 빅터 글로버는 "여러분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우주선에 탄 네 사람을 제외한 우리 모두가 그 사진 안에 있었다. 저 멀리서 보면 지구에는 경계선도, 진영도, 적대의 수사도 없다. 한 덩어리의 푸른 구체일 뿐이다.
 
시민들이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만개한 벚꽃을 보고 즐거워 하고 있다  AJP 한준구 20260401
시민들이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서 만개한 벚꽃을 보고 즐거워 하고 있다. AJP 한준구 2026,04.01

땅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도 아름답다. 이번 주말 봄바람에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다. 올해 벚꽃은 유난히 일렀고, 만개한 시간이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비와 바람에 지기 시작했다. 꽃은 짧아서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그 짧음이 꼭 낭만만은 아니다. 봄의 절정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풍경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불안과 닮아 있다. 오래 피지 못하는 꽃,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평화,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일상.

그러니 4월을 바라보는 시선은 둘이어야 한다. 하나는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거기서는 인류가 하나로 보인다. 전쟁도 국경도 모두 인간이 만든 임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보인다. 다른 하나는 벚꽃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이다. 거기서는 한 사람의 하루, 한 가정의 식탁, 한 도시의 전등, 한 아이의 잠자리가 보인다.

전쟁이란 결국 거대한 지정학이 아니라 이런 구체적인 삶의 붕괴라는 사실이 보인다.

4월은 잔인하다. 이란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석유와 곡물과 비료의 충격을 떠안는 아시아 곳곳에서,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평생 살던 집을 잃고 가족을 잃는다. 기름이 없어 끼니를 걱정한다. 한국은 아직 그 불길의 중심에 있지 않다. 그러나 바깥이라고 해서 무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같은 행성 위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봄의 감상만도, 전쟁의 통계만도 아니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과 잔혹함을 외면하지 않는 눈을 동시에 갖는 일이다. 우주 사진 앞에서 지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벚꽃 아래서 이 계절이 누군가에게는 폐허 위의 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아름답다. 벚꽃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이다.
 
2026년 4월 2일 달 전이 궤도 진입TLI 점화 이후 오리온 우주선 창밖에서 리드 와이즈먼이 촬영한 지구 모습 사진에는 상단 오른쪽과 하단 왼쪽에 오로라가 포착됐으며 하단 오른쪽에는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가운데 황도광zodiacal light이 함께 나타나 있다 NASA로이터연합
2026년 4월 2일 달 전이 궤도 진입(TLI) 점화 이후, 오리온 우주선 창밖에서 리드 와이즈먼이 촬영한 지구 모습. 사진에는 상단 오른쪽과 하단 왼쪽에 오로라가 포착됐으며, 하단 오른쪽에는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가운데 황도광(zodiacal light)이 함께 나타나 있다. (NASA/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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