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기본은 경쟁이고, 공천의 기본은 공정이다. 이 단순한 명제가 흔들릴 때 정당은 내부로부터 무너진다. 국민의힘이 ‘전원 경선 원칙’을 내세워 충북과 대구 공천을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짜기로 한 결정은, 늦었지만 방향만큼은 옳다. 문제는 이것이 일회성 봉합에 그칠지, 구조적 변화의 출발점이 될지에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분명하다. 공천은 권력이 아니라 절차여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후보를 배제하거나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 이른바 ‘컷오프 정치’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당의 신뢰를 잠식한다. 여론조사 상위권이나 현역을 인위적으로 탈락시키는 방식은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자의적 판단’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공천이 전략이 되는 순간, 공정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박덕흠 공천관리위원장이 강조한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은 그래서 핵심이다. 모든 후보에게 동일한 출발선을 제공하고, 경쟁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원칙은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최소 기준이다. 특히 충북지사 공천을 최초 등록 기준으로 되돌리고, 전원 예비경선을 거쳐 통과자가 현직 도지사와 1대1 결선을 치르는 방식은 결과에 대한 승복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정치에서 더 위험한 것은 패배가 아니라 ‘승복하지 않는 패배’다.
그러나 경선이 곧 해법은 아니다. 경선 역시 설계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룰이 불투명하거나 특정 계파에 유리하게 구성되거나, 여론조사 방식이 임의로 바뀐다면 경선은 또 다른 형태의 ‘포장된 공천’에 불과하다. 결국 핵심은 ‘경선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원칙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와 집행에서 완성된다.
이번 공관위 구성에서 절반을 법조인으로 채운 점은 공천 과정이 이미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음을 보여준다. 정당 내부 갈등이 법원의 판단으로 넘어가는 순간, 정당정치의 자율성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근 법원과 국민의힘 간의 사건 배당을 둘러싼 갈등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사법부를 향한 공개적 비판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문제의 출발점이 당 내부 공정성 논란에 있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당이 공천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까지 가는 상황 자체가 이미 신뢰의 균열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신호다. 공천 과정이 투명하고 일관됐다면 법적 대응으로까지 번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법 리스크는 정치 리스크의 결과다.
대구시장 공천 역시 또 하나의 시험대다. 이미 일부 후보가 배제된 상태에서 다시 경선판을 확대할 경우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하다. 기존 후보들의 반발, 일정 지연, 선거 전략 혼선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지키겠다면 그에 따른 비용 역시 감내해야 한다. 원칙은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순간 원칙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물갈이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물갈이의 본질은 인적 교체가 아니라 정치문화의 교체다.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통해 검증된 후보가 선출되는 과정 자체가 가장 강력한 변화다. 유권자는 결과보다 과정을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원칙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점에만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국 모든 공천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향후 선거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될 때 비로소 신뢰는 축적된다. 공천은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정당정치는 결국 사람의 경쟁을 통해 미래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 경쟁이 공정해야 결과도 설득력을 갖는다. 국민의힘이 이번 결정을 계기로 ‘공천은 권력’이라는 낡은 공식을 ‘공천은 절차’로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번 혼란은 단순한 위기를 넘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정치는 결과로 평가받지만, 공천만큼은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그 과정을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이 지금 국민의힘이 회복해야 할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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