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결국 사람의 경기다. 그리고 사람의 경기는 마음에서 무너지고, 기본에서 다시 세워진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불과 석 달 앞두고 치른 유럽 원정 2연전은 한국 축구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코트디부아르전 0-4, 오스트리아전 0-1. 두 경기에서 다섯 골을 내주고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그 질문은 단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과연 기본과 원칙, 상식의 축구 위에 서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문득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장자 소요유 편의 한 구절, '지인무기(至人無己), 신인무공(神人無功), 성인무명(聖人無名)'. 지극한 사람은 자아가 없고, 신인은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성인은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철학의 영역을 넘어 오늘의 축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대표팀이 흔들리는 이유는 전술의 부족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가 앞서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름이 앞서고, 의도가 앞서고, 욕심이 앞서는 순간, 팀은 흐름을 잃는다.
코트디부아르전은 그 전형이었다. 수비 조직은 일관되지 않았고, 압박의 타이밍은 어긋났으며, 전환은 느리고 단조로웠다. 무엇보다 팀 전체의 리듬이 하나로 묶이지 않았다. 축구는 11명이 뛰지만, 실은 하나의 생명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그날의 대표팀은 하나가 아니라 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전진했고, 누군가는 머뭇거렸으며, 누군가는 뒤늦게 따라붙었다. 그 결과가 0-4였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였다.
오스트리아전은 조금 달랐다. 대패는 아니었고, 흐름을 되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후반 초반 단 한 번의 컷백에 실점했고, 이후 몇 차례 결정적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공격은 문 앞에서 멈췄고, 수비는 한순간의 집중력에서 균열이 생겼다.
축구에서 이 ‘한순간’은 곧 운명을 가른다. 강팀은 찬스를 많이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한 번을 놓치지 않기에 강하다. 반대로 약한 팀은 수십 번의 기회를 만들어도 마지막에서 흔들린다. 지금의 대표팀은 후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전술은 중요하다. 홍명보 감독이 강조한 것처럼, 현대 축구에서 하나의 전형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스리백과 포백을 넘나드는 유연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전술은 집이 아니라 도구다. 집은 기본이다. 기본이 무너지면 전술은 장식이 되고, 변형은 혼란이 된다. 지금 대표팀의 문제는 전술의 부족이 아니라, 기본의 불안이다.
기본이란 무엇인가. 첫째, 간격이다. 수비 라인의 간격, 미드필드와 수비의 간격, 공격 전환 시의 공간 활용이 일정해야 한다. 둘째, 타이밍이다. 압박의 시작과 후퇴의 순간, 패스의 속도와 방향이 일관되어야 한다. 셋째, 결정력이다. 골문 앞에서는 생각이 아니라 본능이 작동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화려하지 않지만, 축구를 지탱하는 뼈대다. 이 뼈대가 약하면 아무리 좋은 선수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이름만으로도 세계적이다. 그러나 축구는 이름으로 이기는 경기가 아니다. 손흥민이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것은 개인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 찬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면 팀의 구조가 보인다. 좋은 팀은 공격수가 편안하게 슈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반대로 어려운 팀은 공격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지금 대표팀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공격수에게 해결을 맡기기 전에, 팀이 먼저 길을 열어줘야 한다.
여기서 다시 장자의 문장이 돌아온다. "지인무기.'자아가 없다는 것은 존재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자아를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독이 ‘내 전술’에 집착하지 않고, 선수들이 ‘내 플레이’에 매이지 않을 때, 팀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이것이 축구에서의 무위(無爲)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만들지 않기에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자연스럽기에 조직은 더욱 단단해진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이 무위의 축구에 가까웠다. 그때의 대표팀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압박은 조직적이었고, 수비는 끈질겼으며, 공격은 간결했다. 무엇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이름보다 팀이 앞섰고, 욕심보다 역할이 앞섰다. 그 결과가 세계를 놀라게 한 4강이었다.
지금의 대표팀은 다시 그 원점에 서야 한다. 전술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전술 이전에 기본을 세우라는 것이다. 감독은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먼저 완성해야 하고, 선수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이해해야 하며, 팀 전체는 하나의 리듬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 위에 전술을 얹어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결과도 바뀐다.
월드컵은 냉정하다. 이름도 과거도 통하지 않는다. 그날 가장 준비된 팀이 이긴다. 지금 대표팀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실험을 줄이고, 구조를 다듬고, 기본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감독도, 선수도, 우리 모두가 말이다.
장자는 말한다. “성인은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름을 내려놓은 팀만이 역사를 남긴다. 한국 축구가 다시 세계 앞에 설 수 있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한 번 걸어본 길이다. 기본과 원칙, 상식의 축구. 그 길로 돌아갈 때, 4강의 신화는 과거가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현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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