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페미니스트 황석희의 성범죄 전력, 이 모순은 왜 벌어질까?

사진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캡처
[사진=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 캡처]


번역가 황석희의 성범죄 전력 보도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과거 그가 여성 혐오를 비판하고 여성의 입장을 공감하며 내놓았던 발언까지 재조명되며, 대중의 분노는 충격을 넘어 배신감의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일종의 인격 증명서처럼 내세우며 신뢰, 호감, 도덕적 우위를 확보해온 인물이 정반대의 이력과 마주칠 때 대중이 느끼는 혐오감은 두 배가 된다. 약자를 위한 언어를 자기 브랜딩의 재료로 썼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은 황석희의 보도가 전해진 뒤 온라인상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리적으로 보면 이런 인물의 핵심은 진보성보다 이미지 관리에 있다. 사회심리학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스스로를 비차별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확인한 뒤, 오히려 이후의 왜곡된 판단이나 편향적 행동을 더 쉽게 정당화할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대표적인 '도덕적 자격 확인' 연구에서는 노골적인 성차별에 반대하며 자신의 비차별성을 확인한 사람이, 그 다음 단계에서는 남성에게 더 유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쉽게 말해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확인이 이후의 왜곡을 막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면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남성의 일탈은 생각보다 낯선 조합이 아니다. 신념을 내면화한 사람은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그 간극이 클수록 스스로를 통제한다. 하지만 신념을 브랜드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에게 중요한 건 평등이 아니라, 평등한 사람으로 보이는 일이다. 연구들 역시 남성이 성차별에 맞서는 동기를 하나로 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평등을 지향하지만, 누군가는 여성에게 보호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가부장적 동기에서 움직이기도 한다. 겉으로는 비슷한 언어를 쓰더라도 전자는 경계를 존중하고, 후자는 쉽게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특권의식으로 미끄러진다.

 
사진황석희 계정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사진=황석희 계정,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여기서 더 불편한 진실이 나온다. 남성의 페미니즘적 발언은 더 쉽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 남성이 성차별을 지적할 때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여성들이 더 큰 안전감과 지지를 느끼는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진정성 있는 '남성 연대자'가 존재하고, 실제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짜가 더 위험하다.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누군가는 연대를 만들고 누군가는 접근권, 호감, 면책 분위기를 산다. 문제는 남성의 연대가 아니라 연대의 언어를 평판 관리의 자산으로 바꿔 쓰는 사람이다.

이번 논란이 모든 남성 페미니스트의 위선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조차 어떤 남성에게는 자기 세탁의 언어가 되고, 신뢰를 앞당기는 포장지가 되며, "나는 저쪽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도덕적 신분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페미니즘을 말하는 남성이 아니다. 자기 검열은 없는데 평등의 언어만 장착한 남성이 만들어내는 무적감이다. 2022년 Dinh·Mikalouski·Stockdale의 실험 연구 역시 책임감 있고 공동체 지향적인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권력자가 도덕적 신뢰를 얻을수록, 타인들이 그의 성희롱을 덜 심각하게 판단할 수 있고 당사자 또한 도덕적 면허 속에서 성희롱 의도를 더 쉽게 정당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왜 어떤 사람은 가장 올바른 말을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사용할까. 황석희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는 계속 따져봐야겠지만, 대중이 이번 사안을 보며 느끼는 역겨움의 정체는 짐작할 수 있다. 성범죄 전력 보도에 대한 충격만이 아니다. 선한 언어가 어떻게 자기 연출의 소품으로 타락하는지를 목격했을 때 생기는 혐오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