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EV) 시장의 수요 둔화와 정책 변화로 인해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탈엔진' 노선을 걸어온 혼다가 멈춰섰다. 혼다는 지난 12일 주력 전기차(EV) 모델의 개발 및 생산 중단과 로드맵 전면 수정을 발표했다. 2021년 취임과 동시에 전동화 비전을 지휘해 온 미베 토시히로 사장이 자신의 손으로 그 근간을 도려내겠다고 선언한 순간이었다.
혼다는 이번 전략 수정으로 2026 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까지 최대 2조 5000억 엔(약 22조 원)의 대규모 손실을 반영할 계획이다. 특히 2025 회계연도 연결 당기순손실은 최대 6900억 엔에 달할 전망인데, 이는 1977년 상장 이래 사상 첫 적자 기록이다. 미베 사장은 "부실을 신속히 제거하기 위해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내린 결단"이라며 EV 개발 계획 전면 수정을 공식화했다. 현재 최우선 과제가 추가 손실을 막는 '지혈(止血)'에 있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혼다의 EV 도전기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취임한 미베 사장은 "2040년까지 모든 신차를 EV와 연료전지차(FCV)로 바꾸겠다"는 파격적 목표를 내걸었다. 경쟁사인 토요타가 하이브리드(HV)를 포함한 '전방위 전략'을 고수할 때 혼다는 엔진 기술과의 작별을 고하며 EV에 올인하며, 2030년도까지 10조 엔을 투자하겠다는 과감한 전략을 수립했다. 미베 사장이 직접 챙긴 '제로(0) 시리즈'의 세단 '살룬'은 공기 저항을 극도로 낮춘 디자인과 새로운 'H' 로고를 앞세워 혼다 변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다.
아울러 미베 사장이 지난 2월 상하이의 중국 대형 부품업체 공장을 방문한 뒤 "이 정도면 우리가 도저히 중국을 이길 수 없다"고 내뱉은 고백은 혼다의 위기가 인건비를 넘어 근본적인 '제조 경쟁력의 격차'에 있음을 보여준다. 테슬라에도 납품하는 이 공장은 부품 조달부터 물류까지 전 공정이 자동화되어 현장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 전략 수정이 혼다에게 더욱 뼈아픈 이유는 '현금 유출' 때문이다. 2.5조 엔의 손실 중 절반 이상인 최대 1.7조 엔이 부품 공급사들에 지불해야 할 보상금으로 책정됐다. 2027년 출시를 앞두고 미국 오하이오주 등에서 이미 설비 투자를 마친 부품사들은 혼다의 갑작스러운 개발 중단 통보에 경악했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거액을 투입해 생산 개시만 기다리고 있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혼다는 양산이 시작되었을 때 공급사들이 얻었을 기대 이익까지 보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궤도 수정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혼다 내부에서는 "자존심 때문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성이 흘러나왔다.
시장의 반응은 냉혹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혼다의 신용등급을 1997년 등급 부여 이래 처음으로 BBB+로 강등했다. 오랜 기간 혼다 주식을 보유해온 일본과 미국의 유력 투자신탁들도 조직 거버넌스(지배 구조)의 기능을 문제시하며 혼다 주식을 전량 매도했고, 주가는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혼다는 이제 하이브리드차(HV) 판매를 2030년까지 현재 계획의 2.2배인 220만 대로 늘리겠다는 '현실 노선'으로 회귀하려 한다. 하지만 EV에 자원을 집중하느라 HV 라인업 개발은 한참 뒤처져 있다. 미베 사장은 경영 책임론에 대해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면서도 "사업 재구축 결과를 내는 것이 나의 책무"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세계를 리드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혼다의 질주는 이제 '지혈'과 '생존'이라는 험난한 과제 앞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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