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다시 1500원대 초중반을 위협하고 있다. 숫자 하나의 등락으로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가볍지 않다. 환율은 단순한 가격 변수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체온이 오르면 몸 어딘가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이듯, 최근의 환율 상승 역시 구조적 위험이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한다.
이번 환율 불안의 배경은 비교적 분명하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높아지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금리 수준, 달러 강세,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 단기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통로다. 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 국제 유가 상승은 물론, 물류와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로서는 충격이 배가된다. 과거 중동발 위기 때마다 환율과 물가가 동시에 흔들렸던 경험은 이미 여러 차례 축적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환율 상승은 수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원자재 가격과 수입 비용 상승으로 직결된다. 이는 기업의 생산비 부담을 키우고, 결국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는 비용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수출 기업 일부에 유리한 측면이 있더라도, 경제 전체로 보면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하는 구조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정책 대응의 한계다. 외환시장 개입이나 유동성 조치는 단기적인 변동을 완화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환율 불안의 근원은 외환시장이 아니라 경제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환율 문제를 단순한 금융 변수로 볼 것이 아니라, ‘경제 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었다. 군사와 외교는 안보, 산업과 무역은 경제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에너지, 원자재, 반도체, 물류, 금융까지 모두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로 결합돼 있다. 최근 주요국들이 공급망 재편과 자원 확보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기 대응을 넘어선 중장기 전략이다.
첫째,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 확대,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
둘째, 공급망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원자재와 부품의 확보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
셋째, 산업 구조를 보다 균형 있게 만들어야 한다.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을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인식이다.
환율 상승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순간 대응은 늦어진다.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라, 글로벌 질서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신호에 가깝다.
경제는 숫자로 표현되지만, 본질은 구조다.
환율 1500원대는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경고음일 수 있다.
정부와 시장 모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환율을 ‘가격’이 아니라 ‘안보 변수’로 봐야 할 때다.
경제 안보는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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