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 도저히 안 맞았습니다. 분양가가 인근 구축보다 수억원 높은 데다 대출도 막히니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에서 진행된 신축 단지 청약을 포기한 40대 직장인 A씨의 말이다. 해당 단지 전용 84㎡ 최고 분양가는 22억7000만원으로 인근 기축 시세보다 7억~8억원가량 높게 책정됐다.
분양가가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수도권 청약 시장에서 실수요자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고분양가에 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연봉 1억원 맞벌이 가구조차 청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사실상 자금 조달이 가능한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하면 청약 참여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9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지난해 5131만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2년 평균 분양가(3477만원)와 비교하면 3년 만에 47.6% 상승한 것이다. 강남4구를 제외한 21개 자치구도 같은 기간 3005만원에서 4444만원으로 47.9% 급등하며 비강남권 분양가 상승률이 강남권을 상회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분양가 상승세는 올해도 비강남권을 중심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동작구 노량진6구역 사업의 경우 3.3㎡당 일반분양가가 7500~8000만원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전체 분양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해 평균 서울 분양가는 전국 평균(2093만원)의 2.45배를 기록해, 2019년(1.9배) 대비 그 격차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출 규제로 수요자들의 자금 조달 부담도 대폭 확대됐다. 중도금 대출 한도가 분양가의 40%로 줄어든 데다 잔금 전환 시 15억~25억원 구간 주택은 주담대 한도가 4억원으로 제한돼 수분양자의 현금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연봉 1억원 맞벌이 가구의 연간 저축 가능액이 3000만~4000만원대임을 감안하면 계약금 마련에만 4~5년치 저축이 필요한 셈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수도권 자가 가구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8.7배에 달한다. 수도권에서 주택을 구입하려면 소득을 9년 가까이 전액 저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 신축 분양가 급등은 실수요자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대기업 직장인 30대 B씨는 “선호 지역은 1순위 청약 조건·70점대 가점은 물론 막대한 자금력의 3요소를 모두 갖춰야 진입이 가능한 ‘성’이 됐다”고 푸념했다.
고분양가 부담은 청약 경쟁률과 초기분양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도권에서 전용 85㎡ 초과 대형 평형의 경쟁률은 22.2대 1이었지만 하반기에는 2.1대 1로 급감했다. 미계약 사례도 잇따랐다.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 ‘수지자이에디시온’은 고분양가 탓에 두 차례 무순위 청약을 진행해야 했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 ‘해링턴플레이스 노원 센트럴’은 노도강 지역임에도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이 5.51대 1에 그쳤다.
초기분양률도 급락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경기 초기분양률은 지난해 1분기 75.5%에서 4분기 59.3%로 떨어지며 분기 기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경기 평균 분양가는 2024년 평당 1982만원에서 지난해 2088만원, 올해 1~3월 2527만원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분양가 상승과 초기분양률 하락이 맞물리는 흐름이다. 수도권 전체로 보면 지난해 4분기 민간아파트 초기분양률은 60.0%로 HUG가 2013년 3분기 집계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저였다. 전년 동기(83.9%)보다 23.9%포인트 급감한 수치다.
현장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분양가 기조가 실수요자를 청약 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백새롬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고분양가 환경에 대출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청약시장에서 현금 자산 비중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며 “자금 조달 능력에 따라 청약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면적대를 줄이거나 입지를 낮추는 방향으로 타협하거나 아예 청약을 단념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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