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뉴질랜드의 와이탕이 데이: 원주민에 대한 참회와 포용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이병종
미국과 많은 서방 선진국들이 이민자를 쫓아내고 소수자를 소외시키는 가운데, 이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오랫동안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유럽계 및 기타 정착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바탕으로, 상호 존중에 기초한 다문화주의 정책을 추구해 왔다. 이러한 자랑스런 전통은 국경일 행사에서 가장 생생하게 드러난다.
‘와이탕이 데이(Waitangi Day)’로 알려진 이 날은 1840년 마오리족과 영국 왕실 사이에 체결된 조약을 기념하는 날로,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뉴질랜드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가치들은 오늘날 뉴질랜드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올해 와이탕이 데이 기념행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사관저에 모인 참석자들에게 던 베넷 대사는 특히 마오리 문화를 비롯한 모든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자국 정부의 의지를 연설을 통해 강조했다. 베넷 대사는 코로와이(korowai)라 불리는 전통 마오리 망토를 입고, 오늘날 뉴질랜드에서 깊이 소중히 여겨지는 마오리 관습과 전통을 소개했다.
연설 도중 베넷 대사는 사람들 간의 더 깊은 유대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마오리 전통 인사 방식인 페페하(pepeha)에 따라, 마오리어로 자신의 가계를 소개했다. “마오리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관계가 먼저입니다.”라고 대사는 전했다. “그래서 모든 모임은 전통적으로 자기소개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조상은 누구인지,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눕니다.” 대사의 연설 이후에는 대사관 전 직원이 전통 마오리 춤과 함께 마오리 노래를 흥겹게 합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와이탕이 데이는 뉴질랜드가 과거 원주민에게 저지른 잘못을 진지하게 참회하고 인정하려는 노력 또한 상징한다. 번역상의 차이 등으로 인해 와이탕이 조약은 초기에는 마오리와 유럽계 정착민 사이에서 서로 다르게 해석되었고, 이는 원주민에 대한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처우로 이어졌다. 마오리의 토지 소유권과 기타 권리는 20세기 중반까지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는 이러한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마오리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등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취해 왔다.
오늘날 뉴질랜드는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토대 위에 확고히 뿌리내린 성공적인 다문화주의의 모범 사례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이중문화적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마오리어는 언론, 교육, 공공 표지판 등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정치와 기업 분야에서 마오리족 참여 역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적극 장려된다. 사회적 결속을 목적으로 수립된 이민 정책은, 많은 선진국에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인종 간 갈등과 반목 현상을 방지해 왔다.
뉴질랜드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은 2019년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에서 50명 이상을 살해한 사건은 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증오범죄였다. 평화로운 이미지로 알려진 나라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세계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이 비극에 대해 놀라운 품위와 절제로 대응했다. 당시 총리였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은 검은 히잡을 착용한 채 희생자 가족들을 따뜻하게 껴안고 위로하며, 깊은 슬픔의 순간에 국가적 단합을 호소했다. 정부는 불과 6일 만에 군사용 반자동 무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인종 차별 및 폭력에 대한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은, 특히 미국과 같은 나라들의 상황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반이민 정책은 문화 전쟁을 부추기며 미국 사회의 균열을 심화시켰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등장한 극우 반이민 운동 역시 사회 안정에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뉴질랜드의 개방성과 관용은 널리 찬사를 받으며, 중요한 소프트파워 자산으로 평가된다.
물론 뉴질랜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국가다. 또한 영화 《반지의 제왕》과 같은 블록버스터 작품을 통해 청정한 자연 경관을 전 세계에 알리며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국가대표 럭비팀 올블랙스(All Blacks) 역시 국민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스포츠에 대한 뉴질랜드인의 열정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뉴질랜드인들은 자연을 깊이 사랑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이유로 뉴질랜드는 한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 상위 5위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의 빠듯하고 경쟁적인 삶과 대비되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키위’식 삶을 동경한다.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태도 면에서 한국은 뉴질랜드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한국 사회는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이며 때로는 경계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민자 수가 증가하면서 일자리 경쟁에 대한 우려를 바탕으로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덜 발전한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두드러진다. 온라인에서는 한국인의 차별적 태도를 비판하는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물론 뉴질랜드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오리의 권리와 생활 여건은 수십 년에 걸쳐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불평등은 존재한다. 높은 생활비와 주거 비용 문제는 특히 청년층에게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젊은 뉴질랜드인들이 일자리를 찾기 더 쉬운 옆 나라 호주로 이주한다. 이민자들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 인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있다. 다행히 뉴질랜드의 효과적인 이민 정책 덕분에 신규 이주민들은 비교적 원활하게 현지 사회에 적응한다. 미국, 한국, 그리고 여러 나라가 주목해 배울 만한 사례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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