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원칙·상식 : 부동산 세레나데] —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대상이 아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부동산의 원칙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어느 시기에는 성장의 엔진이었고, 어느 시기에는 불평등의 근원이었으며, 최근 수십 년간은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 단절을 키운 핵심 요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부동산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한 정부의 정책 선택을 넘어 국가의 철학을 보여주는 문제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보이는 부동산 투기 억제 의지는 단순한 시장 개입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구조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실전형 행정가’ 출신 대통령이다. 성남시장 시절 도시개발 인허가의 최전선에 있었고, 경기도지사로서 광역 단위의 종합 개발·관리 경험을 축적했다.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정책의 입법·행정·정치적 맥락을 모두 체득한 인물이다. 이력만 보더라도 부동산을 이론이나 이념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한 지도자라 할 수 있다. 그가 아파트 투기와 개발 이익의 편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취임 초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신문협회·방송협회 합동 발행인 만찬에서 이 대통령이 밝힌 인식은 분명했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겪는 여러 ‘종합병적 증상’—강남 집값 과열, 지방 소멸, 지방대 위기, 청년층의 자산 격차—이 모든 문제가 결국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중심 성장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오랜 경로 의존성에 대한 진단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개발국가 체제 아래에서 고속 압축 성장을 이뤘다. 국가 주도의 개발 계획, 특정 산업과 대기업에 대한 자원 집중, 대규모 토목·주택 개발은 성장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독점적 구조와 자산 가격 상승에 기대는 축적 방식이 자리 잡았다.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 혁신보다 토지와 주택의 가격 상승이 더 빠른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부동산은 ‘노동’이나 ‘혁신’보다 더 확실한 부의 사다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구조는 세대를 거치며 심각한 왜곡을 낳았다. 집을 가진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자산 차이를 넘어 삶의 기회 자체를 갈라놓았다. 지방은 인구와 자본을 잃고 쇠퇴했고, 수도권 특히 강남은 자산과 교육, 일자리가 중첩되는 공간이 됐다.
 

지난해 서울 주요지역 집값의 가파른 상승과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전국 아파트값 상하위 격차가 14배 수준으로 벌어졌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등 서울 시내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주요지역 집값의 가파른 상승과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전국 아파트값 상하위 격차가 14배 수준으로 벌어졌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등 서울 시내의 모습.[사진=연합뉴스]

부동산 가격은 단순한 시장 지표가 아니라 사회적 이동성의 장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를 그대로 두는 것은 ‘시장 존중’이 아니라 왜곡된 구조를 방치하는 일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해외 사례는 중요한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실물경제를 어떻게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경험했다.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한 자산 팽창은 단기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결국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후 미국 정책당국은 주택 시장 안정과 금융 규제 강화를 병행하며, 성장의 무게중심을 기술 혁신과 자본시장으로 다시 옮기는 데 주력해 왔다.
 

유럽의 선택은 더 분명하다. 독일은 대표적인 ‘비(非)부동산 투기 국가’다. 실거주 중심의 임대 시장, 장기 보유를 전제로 한 세제 구조, 엄격한 개발 규제가 결합돼 집값 상승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지 않는다. 그 대신 제조업과 기술 경쟁력, 지역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경제는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독일은 구조적으로 증명해왔다. 



이런 문제의식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학자들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해 왔다. 그는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는 자산 축적이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경제는 구조적 정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토마 피케티 역시 『21세기 자본』에서 자산 가격 상승이 소득 증가율을 장기간 상회할 때 부의 집중이 가속화되며, 이는 민주주의와 경제 역동성 모두에 부담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부동산을 단순한 시장 상품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로 본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의 상황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우는 정책 방향은 이른바 ‘5극 3특 체제’로 요약되는 지방 균형 발전 구상과도 맞물린다. 핵심은 명확하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지역의 산업 기반, 특히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자본이 토지로 몰리는 시대에서 기술과 혁신으로 이동하는 시대, 이 흐름을 국가 정책으로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다.
 

그래프노트북LM
[그래프=노트북LM]

AI 시대의 경제는 과거와 다르다. 부가가치는 공장 부지의 크기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인재의 역량에서 나온다. 이런 시대에 자본이 아파트 매입에 묶여 있다면, 그것은 기회비용의 손실이다.  부동산 투기 억제는 단지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이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생산적 영역으로 돌리겠다는 산업 정책이기도 하다. 주식시장과 벤처 투자, 신산업으로 자금이 흐르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중장기적 정체를 피하기 어렵다. 
 

물론 부동산 정책은 늘 반발을 동반한다. 자산 가치의 변동은 곧바로 민심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과 상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투기로 형성된 초과 이익에 기대는 구조를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거주 중심, 장기 보유 중심,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한 세제와 금융 구조는 시장을 억누르는 장치가 아니라 시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장치다.  단기 차익을 노린 레버리지 투자에 유리한 구조가 줄어드는 대신, 안정적 주거와 실물 경제 활동에 유리한 구조가 자리 잡는 것이 ‘정상화’의 방향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은 결국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집은 사는 곳이지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 말은 새롭지 않지만, 그것을 단기적 표 계산을 넘어 중장기 정책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정치적 결단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개발과 부동산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태도는 분명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다. 

부동산 문제는 어느 정부에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방향이다.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투기 구조를 줄이고, 지역과 산업의 균형을 회복하며, 자본을 생산적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그 과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결국 부동산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구조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지만 동시에 필수적이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 논쟁은 집값의 등락을 넘어 대한민국이 어떤 경제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투기 중심의 자산 축적 모델에서 혁신 중심의 성장 모델로의 전환—그것이 AI 시대 ‘부동산 인식 대전환’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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