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금기 깬 일본 '핵보유' 언급, 중국 반발 속 외교 리스크 부상

  • 1967년 사토 총리가 표명한 '비핵3원칙' 중시...'핵보유' 금기시해 와

  • 日총리실 간부 "정권서 논의하는 건 아냐" 선 그었지만...일각선 "여론 떠보기"

  • 中외교부 "군국주의 되살려 군사화 가속" 비난...日야권서도 발언자 경질 요구

일본 히로시마에서 반전 반핵 시위가 열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히로시마에서 반전 반핵 시위가 열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정부 수뇌부에서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언급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일본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비핵 3원칙’을 국가 정체성처럼 유지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이미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된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중·일 관계에도 또 하나의 불안 요소가 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도통신과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에서 안보 정책을 담당하는 총리실 고위 간부는 18일 취재진과의 비공식 접촉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간부는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증강, 북한의 핵 개발을 언급하며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한층 엄중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며, 궁극적으로는 일본 스스로 핵 억지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발언은 비보도를 조건으로 한 취재 과정에서 나왔지만 보도 직후 일본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강한 논란이 일었다. 교도통신은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목표로 해 온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현저히 동떨어진 발언”이라며 국내외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해설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핵무장’이나 ‘핵보유’라는 표현 자체가 오랫동안 정치적 금기어로 인식돼 왔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표명한 비핵 3원칙, 즉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총리실 고위 관계자가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발언 당사자 역시 현실적인 제약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는 핵무기 보유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오는 것처럼 바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비핵 3원칙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또 현재 다카이치 정권 내에서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은 다카이치 정권 출범 이후 이어져 온 안보 정책 기조와 맞물리며 더욱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다카이치 총리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방위력 강화와 방위비 증액을 추진해 왔다. 집권 자민당 내부와 보수 진영에서는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본 스스로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취임 전에는 비핵 3원칙 가운데 ‘반입 금지’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총리실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단순한 개인 의견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번 발언을 두고 “다카이치 정권이 비핵 3원칙 재검토를 염두에 두고 여론을 떠보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의 ‘유사시 대만 개입’ 발언으로 냉랭한 중·일 관계는 이번 일본 고위 간부의 ‘핵 보유론’ 언급으로 더욱 악화할 모양새다. 중국 외교부의 궈자쿤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보도가 사실이라면 사태는 상당히 심각하다”며 “이는 일본의 일부 인사가 국제법을 위반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위험한 음모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궈 대변인은 특히 일본이 최근 군사·안보 분야에서 잇따라 ‘잘못된 언행’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우익 보수 세력이 군국주의를 되살리고 국제 질서의 구속에서 벗어나 군사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파장은 적지 않다. 입헌민주당과 공명당, 공산당 등 야권은 해당 발언자의 경질을 요구하며 공세에 나섰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믿기 어려운 발언으로 매우 놀랍다”며 조기 사퇴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과거 1999년 자유당 소속 니시무라 신고 의원이 핵무장 발언으로 방위청 정무차관에서 경질된 사례가 다시 거론되며, 이번 사안 역시 중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고,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발언자의 경질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피했다.

핵무장론 자체가 당장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비핵 3원칙을 둘러싼 미묘한 균열이 국제사회, 특히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본이 안보 환경 변화 속에서 어디까지 선을 넘을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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