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느긋함으로 세계를 그리다, 보노보노는 왜 아직도 우리를 위로하는가

보노보노의 세계에는 큰 사건도, 분명한 결론도 없다. 해달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바다를 걷고, 멈춰 서서 생각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느긋한 흐름 속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외면하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려움, 허무, 불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게 하는 마음. 그래서 보노보노는 ‘귀여운 캐릭터’로 시작해, 어느 순간 삶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보노보노는 단 한 번도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쓰지 않았다. 보노보노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는 자신이 느낀 감정과 기억을 천천히 꺼내어, 느긋한 세계 속 캐릭터들에게 맡겨왔다. “어떻게든 될 거야.” 이가라시 미키오가 보노보노를 통해 반복해온 이 한마디는 위로이자 철학이며, 4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이 작품의 중심축이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보노보노가 탄생한 순간부터, 아이디어가 막힐 때의 태도, 캐릭터들이 스스로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왜 지금도 이 만화를 그려야만 하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보노보노는 어떻게 한 세대를 넘어 여러 세대의 마음에 닿았을까. 느긋함이 곧 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온 40년의 기록을, 작가의 목소리로 따라가 본다.

보노보노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보노보노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보노보노는 단순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처음 보노보노를 구상할 때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으셨나
- 이전에도 만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 느긋한 만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고민했고, 느긋한 세계에서 느긋하면서도 독특하게 흘러가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보노보노를 그리게 됐다.

보노보노는 어떤 계기로 탄생한 캐릭터인가. 탄생 비화를 알려달라
-보노보노는 해달이라는 동물이다. 아마 한국에서는 해달이 인기가 있거나 일반적인 동물은 아니라고 들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해달 붐이 두 세 번 정도 있었다. 그 해달 붐이 있었을 때 주변의 수족관을 방문해서 해달을 보게 됐다.
그때 몸도 마음도 모두 해달에게 빼앗겨서, ‘이 해달을 캐릭터로 해서 만화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달의 낙서를 이것저것 그리면서 그 그림들을 만화 편집자에게 보여줬다.
편집자와 몇 번 정도 코멘트를 주고받는 과정이 있었고, 담당 편집자분께서 “이 해달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려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정말 내가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르겠다, 한 번 그려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보노보노를 만들게 된 계기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오랜 기간 연재를 해오셨는데,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아이디어가 고갈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 40년을 그려왔지만 40년 동안 그림만 그려온 것은 아니다. 여러분과 똑같이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지냈다.
그 속에서 제 자신의 기분에 남는 것, 감정에 걸리는 것들을 ‘이걸 만화로 그려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게 뭔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될까를 정말 많이 고민한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바로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정말 많이 생각한다.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낼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아이디어는 그렇게 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면 차라리 집에 가서 그냥 자는 게 낫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다음 날 기분 좋게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작가님의 어린 시절에 ‘동굴 아저씨’ 같은 무서운 존재가 있었나
-동굴 아저씨가 한국에서 반응이 좋다는 점에 정말 놀랐다(하하).
무서운 존재는 어릴 때 누구에게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어른들이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전부 동굴 아저씨처럼 보였다. 그래서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때의 감정이 마음속에 남아 있고, 그 감정을 지금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작가님이 만든 세계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 보노보노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 언제 그런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 생각대로 만화가 잘 안 그려질 때 ‘나도 보노보노처럼 바다에 가서 멍하게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책상 앞에 앉아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다(하하). 사실 40년 동안 보노보노를 계속 그리고 있지만 계속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이 많다. 그래서 스포츠를 생각했고,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축구를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건 아마 여러분들에게 엄청난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제 특기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하나의 세계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다 보면 실증이 나거나, 새롭게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나
- 40주년이 되면서 주변에서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싫증이 난 적이 없다. 보노보노를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뚱뚱한 보노보노도 그린 적이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저는 제가 그리고 싶은 방식으로 그렸다.

40년 동안 보노보노를 그리면서 바뀐 점들이 있나
- 보노보노는 사실 크게 바뀐 건 없다. 스토리 속에서는 강해질 때도 있고 약해질 때도 있지만 성격 자체는 바뀌지 않도록 그리고 있다. 하지만 포로리나 너부리 같은 다른 캐릭터들은 점점 변해간다. 포로리는 돌봄을 하게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괴롭힘을 당하던 캐릭터였지만 점점 현실적인 존재로 변해간다. 그것은 제가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캐릭터 스스로가 자기 힘으로 변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작품 속에서는 두려움, 슬픔, 허무, 일상 같은 감정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정서들은 작가님의 어떤 경험이나 사고에서 비롯된 건가
- 만화가로 살면서, 그리고 그 이전의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지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보자는 생각에서 보노보노를 그리게 됐다.
보노보노를 통해서 제 안에 쌓여 있던 감정과 기억들을 다시 한 번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노보노의 캐릭터들은 모두 성격이 뚜렷하면서도 모순이나 불안정함을 지니고 있다. 이런 캐릭터 설계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나
- 느긋한 세계에서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캐릭터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그 세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캐릭터였으면 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성격, 즉 그 세계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을 법한 ‘리얼한 성격 데이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설계했다.

그렇다면 보노보노에서 가장 강렬한 철학적 테마를 하나 꼽는다면 무엇일까
- 어떤 경우나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보노보노의 가장 큰 철학적 테마라고 생각한다.

첫 브레인스토밍부터 한 회의 만화가 완성되기까지, 작가님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흘러가나
- 예전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아이디어를 혼자서 기본적으로 구상한다. 그다음 바탕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이후에는 어시스턴트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만화를 완성하게 된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캐릭터 간의 대화가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실제 주변 인물이나 작가님의 생각이 표현된 캐릭터가 있을까
- 사실 따뜻한 대사나 중요한 대사, 좋은 아이디어는 원고를 그리고 있을 때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저는 만화를 그리지 않을 때 어떻게 지내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곧 대사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캐릭터 간 대화에 실제 작가님의 생각이나 주변 인물이 투영된 경우가 있나
- 여러 캐릭터를 그려왔지만, 그중에서도 제 생각이 가장 많이 표현된 캐릭터는 역시 보노보노다.

보노보노 특유의 그림체나 대사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 일본 만화에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그림의 방식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저는 만화 속에 제 안의 리듬을 얼마나 넣을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했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면서도 그 안에 흐름과 템포를 만들어내고, 독자적인 생각과 다른 작가들과는 조금 다른 감각을 넣으려고 노력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오랜 기간 장기 연재를 이어오면서, 작가님의 삶이나 생각이 작품에 반영되어 달라진 부분도 있나
- 보노보노가 40주년이 되면서 저도 나이가 들었고, 그만큼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들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그런 부분을 작품 속에 비교적 쉽게 반영할 수 있게 됐다.

보노보노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것만은 꼭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뭔가
-  “어떻게든 될 거야”다.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어떻게든 된다. 그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다.

연재가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텐데,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 40년 동안 보노보노를 그리면서 중간중간 그만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제가 그리지 않으면 이 친구들이 죽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캐릭터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죽기 전까지는 보노보노를 계속 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제 원동력이다.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보노보노, 포로리, 너구리처럼 서로 성격이 다른 캐릭터 구성은 처음부터 의도하신 건가
- 처음에는 보노보노라는 캐릭터만 있었지만, 혼자서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명의 친구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포로리는 괴롭힘 당하는 친구, 너부리는 괴롭히는 친구로 설정했다. 이 세 명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린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회차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
- 40년 동안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굉장히 신기하다. 처음 5년 정도는 큰 반응이 없다가, 10년이 지나면서 인기가 많아졌다. 언제 그만둬도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관두면 이 아이들이 죽기 때문에 계속 그렸다. 왜 사랑받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하하). 한국에서 이렇게 사랑받는 것도 아직도 신기하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세대가 다른 독자들이 동시에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제 어린 시절의 기분과 감정을 그대로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들도 그 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공감하면서 친근함을 느끼는 것 같다.

해외 독자들에게서 받은 반응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 해외 독자와 일본 독자의 반응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들 “귀엽다”고 말해주시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고 신기하다.

요즘 젊은 만화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뭔가
- 한마디만 하겠다. 남의 흉내를 내지 마라.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디지털 연재 환경으로 바뀌면서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나
- 제작 환경이 완전히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종이로 작업한 뒤 디지털화하는 방식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가 오히려 도움이 됐다.

현재 일본 만화계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나 흐름이 있다면 뭔가
- 다른 만화를 많이 읽지는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예전보다 엔터테인먼트성이 강한 작품들이 늘어났다고 느낀다. 작품 자체보다는 캐릭터가 강한 성격을 지닌 경우도 많아졌는데, 이것이 좋고 나쁘다고 단순히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노보노 이후에 새롭게 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
- 지금까지는 자유롭게 그려왔는데, 앞으로는 소년 만화 세계에도 들어가 보고 싶다. 스포츠 만화도 생각하고 있고, 보노보노 캐릭터들이 축구를 하는 만화도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보노보노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은가
- 지금까지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왔다. 앞으로 어떤 시대가 오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세계든 그 흐름에 맞춰 대응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자들이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뭔가
- 계획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만큼 한국의 도움을 받아 보노보노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보노보노처럼 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달라
-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나는 뭐든지 될 수 있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그 생각만 있다면, 어떤 삶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보노보노 이가라시 미키오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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