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말은 '개혁' 결국은 '장악'

더불어민주당이 법원행정처 폐지와 퇴직 대법관에 대한 전관예우 금지 등 사법개혁 초안을 공개했다. 말은 '개혁'이지만, 사실상 개혁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법원 체계 전반을 흔드는 중대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합의와 조정이라는 정치의 기본 절차를 생략한 채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는 권력 재편을 위한 일방 독주에 가깝다.

사법불신극복·사법행정정상화 태스크포스(TF) 초안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이를 대신할 합의제 기구인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추진한다. 사법행정과 재판 기능을 분리함으로써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또 대법관은 앞으로 대법원 처리 사건을 5년 간 수임하지 못한다.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합헌적 조치라는 설명이다.

이 안을 두고 사법 독립 침해가 우려된다는 사법부의 목소리도 당연히 나오고 있다. 사법부 내부로부터 독립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외부로부터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개혁의 당사자인 사법부의 의견도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민주당은 '사법 불신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사법의 내적 구조를 잘 아는 전문가들·법관들·행정 실무진과의 충분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개혁이 아닌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개입 확대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야당도 "개혁이라는 그럴 듯한 단어로 포장했지만, 본심은 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사법부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다시 짜겠다는 속내를 본격화한 것"이라며 "법원의 인사·행정·예산을 통째로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사법개혁은 어느 정권에서든 필요성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방식은 문제 해결보다 권한 배분의 재구성이라고 봐야 한다. 대법관 증원, 인사 구조 개편, 새로운 제도 도입 등은 모두 사법기관의 권한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사안이다. 이런 수준의 개편은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데 이미 결론을 내놓고 그 결론을 향해 앞만 보고 가는 모습이다.

사법제도는 정당 하나의 추진으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닌 국민 전체의 권리 보호를 위한 것이다. 중대한 사안을 속도전에 맡겨서는 안된다. 사법을 개편하는 손길이 서두를수록 독립성은 약해지고 균형은 흔들리며 국민 신뢰는 낮아진다. 개혁은 '옳은 방향'과 '올바른 절차'가 함께 갈 때만 결과가 뚜렷해진다.

민주당이 언급하는 '견제'는 정치와 사법이 대등할 때 의미가 있다. 지금처럼 의석을 앞세워 단독으로 밀어붙이는 구조에서는 견제가 아니라 '장악'으로 봐야 한다. 사법 불신을 핑계로 사법권을 재배치 한다고 무너진 국민 신뢰가 올라가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속도를 줄이고, 절차를 회복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정치적 중립성을 증명해야 한다.

이번 '개혁' 행보는 시기적으로도 민감하다. 정치·사법 이슈가 겹쳐 있는 상황에서 대대적 손질에 나선 것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목적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 사법제도는 현 정권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하기 마련이다. 다만 투명성과 공론화가 핵심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의 민주당 방식은 정반대다. 그리고 묻고 싶다. 일방적인 사법개혁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왜 지금인가. 왜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가"
 
조현정 정치사회부 차장
조현정 정치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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