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정부는 ‘해외여행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을 내세워 성인 출국자 부담금을 1만원에서 7000원으로 낮추고 면제 대상을 만 2세에서 만 12세로 확대했다. ‘해외여행 소비가 늘면 내수에도 긍정적 파급효과가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 살림살이가 더 나아졌나. 항공권은 더 비싸졌고, 물가는 오히려 올랐다. 그사이 관광진흥개발기금은 연간 13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산업의 뿌리만 갉아먹은 감세였다.
지난 14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의원 모두 ‘출국납부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김대현 제2차관 역시 “공감한다”고 답했다. 김 차관은 “물가를 반영하면 2만원도 적정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스스로 감세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출국납부금은 관광기금의 핵심 재원이다. 지역관광 활성화, 인프라 확충, 중소기업 지원에 쓰인다. 그러나 인하 이후 예산이 급감하며 사업이 잇달아 축소·지연됐다. 결국 그 부담은 일반회계로 전가됐다. 공공재 유지 비용을 국민 전체가 떠안는 구조가 됐다.
정부는 코로나 기간 고갈된 관광기금을 메우기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2조3800억원을 차입했다. 상환은 2030년부터 본격화된다. 현 수입 구조가 유지된다면 2030년에는 1조1396억원 적자가 불가피하다. 재정이 마르면 안전관리, 인력 양성, 디지털 전환 같은 필수 투자가 멈춘다.
해외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2019년 1000엔(약 9000원)의 출국세를 도입했고, 유럽 주요국은 항공환경세·관광세를 잇달아 올리며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인하를 택했다. 그 결과는 재정 공백과 경쟁력 약화였다.
더구나 인하 조치로 외국인 출국자도 감면 혜택을 받았다. 세금은 줄었지만 혜택은 외국인에게도 돌아갔다. ‘국부 누수’ 논란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의 7000원은 1990년대 수준이다. 출국납부금 인상은 국민에게 새 부담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산업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다. 지난 1년의 감세 실험은 충분했다. 소비는 살아나지 않았고, 관광의 기반만 흔들렸다.
이제 방향은 분명하다. 1만원 복귀를 출발점으로 삼고, 동시에 제도 구조를 손봐야 한다. 저소득층·환승객·상용 운송 종사자 등에는 감면·면제를 적용해 형평성을 확보하고, 인상분 전액은 관광 인프라·안전·중소업체 지원 등 공공목적에만 사용해야 한다. 집행 내역은 상시 공개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물가·환율·관광객 수 변화에 따라 1만~2만원 범위 내에서 자동 조정되는 ‘밴드형 구조’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치 논쟁 없이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제는 결단의 문제다. 지금 올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느냐, 아니면 훗날 더 큰 비용으로 부실을 메우느냐. 선택지는 둘뿐이다.
정부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출국납부금 인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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