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홍구 작가는 아르코미술관의 '안티셀프, 나에 반하여' 전시를 준비하면서 큐레이터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1998년작 <나는 누구인가 16>을 회상하며 이처럼 썼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30대 중반이었던 당시 그는 작가로서 입지랄 게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버티는 것이 익사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변방의 섬 출신이자 칠남매 장남으로 대단한 재능도 없는 주제에 되지도 않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거금을 들여 컴퓨터, 스캐너, 프린터를 장만해 새로운 매체 '사진 작업'을 시작한 데는 이 죄책감과 익사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했을까. 그는 우뚝 솟은 63빌딩을 배경으로 한강에 빠져 얼굴만 내놓고 겨우 숨만 쉬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이미지가 바로 <나는 누구인가 16>이다.

그의 안티(anti)는 그렇게 시작됐다. 회화를 했던 나에 대한 안티에서 시작해 사진 매체가 지닌 기존 문법에 대한 안티,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안티 등으로 이어졌다. 스스로를 B급 작가라고 칭하며 <해수욕장>(1999),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디에 있는가>, <행복한 우리집>(1997), <전쟁공포>(1998) 등 컴퓨터로 조작한 합성 사진을 만들며 사진 매체의 기존 문법을 비틀었다.
1990년대 신세대 작가로 분류됐던 강홍구는 이제 중견 작가다. 그는 서신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들이 사실인가 의문이다"며 아주 오래전에 자신이 쓴 글들을 끄집어내곤 했다. 그 글들은 오래전의 '나'이기도 했다. 그는 과거의 글들을 보고 이렇게 썼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 보아도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변화가 있다면 최근 어느 건축 현장을 찍고 있는데, 찍으면서 관점이 약간 바뀌는 것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그의 '안티-셀프'는 진행형이다.

反하다
'반하다.'반하다란 말은 이중적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에 '나에 반하여'란 문구 속 '나'는 자신의 얼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질식사하고마는 나르키소스적 존재이거나 혹은 기존의 나를 거스르고 해체하고, 운이 좋다면 무언가를 깨고 나오는 존재일 수 있겠다.
아르코미술관의 기획 초대전 ‘안티-셀프: 나에 반하여’는 후자들의 이야기다. 강홍구, 김나영&그레고리 마스, 김옥선, 김지평, 하차연 등 중견 작가 5인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데 묶였다. 이들은 다루는 매체도, 개성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은 나, 내가 하는 매체, 내가 발 딛고 선 현재, 내 작업의 토대인 전통 혹은 관습을 성찰한다. 이들은 기성의 문법과 시대에 반(反)하고, 자신이 가진 토대에 반(反)하며 스스로를 계속해서 재정립하는 '안티-셀프'들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해나 학예사는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들과 세 차례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는 이 글들은 대화라고 말했다. "서신은 시대적인 배경, 어떤 매체를 선택했는지, 작가 본인에 대한 질문, 시간의 흐름, 한국 미술 현장 등에 대한 코멘트들을 망라하죠. 나에 대한 이야기이자, 시대, 정체성, 미술계 속 나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레고리 마스와 김나영은 서신에서 "기억은 동화와 비슷한 재구성의 산물이다" "시스템은 하위 시스템 덕에 실행 가능하다"고 말하며 "행복해지는 방법은 무(無)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단지 만족이나 대양적 감정도 아니고 권력이나 섹스, 자원, 안전, 건강, 젊음도 아닙니다. 바로 무(無)에 몰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위에 언급한 것들은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예술의 기능 중 하나는 무에 몰입하는 행위를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들은 미니마우스, 미키마우스, 키티 등 고양이도 쥐도 아닌 중간적인 것들 혹은 대량생산의 상징들을 조각 등 수공예 작품으로 제시한다. 또한 피카소의 작업을 못 박아 표현하거나 헨리 무어의 구멍을 수석(壽石)에 뚫는 등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에 반한다.

언제나 변화하다
"전통에 대한 일반론을 뒤집으며 시작하고 싶어요. (중략) 제가 '재야'의 전통이라고 부르며 찾고자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것, 공인된 전통 문화 바깥에 있어 잘 깨닫지 못하지만 분명히 있는 어떤 것들입니다." (김지평, 6월 8일 서신)

김지평은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다. 전통에서 배제되거나 누락됐던 괴이한 민담, 무속의 부적의 원리 등 전통 밖의 전통에서 현대성을 찾고, 전통과 현대를 대립적으로 보는 일반화된 관점에서도 탈피하고자 한다. 그는 '없음'을 시각화한다. 존재하지 않는 산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그림을 그린다.

"멋진 동물을 타고 두려움없이 달리고 싶은" 그는 <더 월드 스핀스(The World Spins)>
다만, 자화상은 아니다.
"언제나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저에게 불가능한 일 같아요. 어제 그린 내 모습이 오늘은 달라져 있을 테니까요. 그림이 완성될수록 이 그림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얼굴 속에 내 모습이 있고, 그 모습 속에 다른 여성들의 얼굴이 있고…."
전시는 아르코미술관 제1·2 전시실에서 이달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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