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정부는 바뀌어도 시민은 남는다 …한·일 관계의 '진짜 힘'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양국 서로가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거듭해왔다. 1965년 당시 연간 1만 명이었던 양국 간의 왕래가 코로나 사태를 전후해 저조해졌다가 이제 완전히 회복되어 하루 3만 명을 넘고, 2024년에는 최초로 연간 1200만 명의 왕래를 기록할 정도로 발전했다.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이 K-POP을 비롯한 한류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음식, 여행 등 다양한 문화가 한일 간에서 공유되고, 과거에는 “가깝고 먼 나라”로 불리던 한일관계가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가까운 나라”로만 여겨질 정도로 양국의 거리는 좁혀졌다.

과거사 강제노동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계기로 2019년 “사상 최악의 관계”에 빠졌던 한일 관계는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정부 사이에서 회복되는 듯 보였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파면을 거쳐 이재명 정부와 이시바 정부의 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축하 분위기 또한 마냥 밝기만 하지는 않으나, 기념할 만한 한 해를 밝히듯 올해 2월에는 서울 N타워와 도쿄 타워의 동시 조명 점등식이 열리는 등 한일 간의 각종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취임한 지 채 1년도 안 돼 사임을 표명함으로써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지도자 교체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시바를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간주한 한국에서는 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성실한 자세를 호감을 가지고 좋게 보았고, 한일관계 진전에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일본 입장에서 올해는 “전후 80년”이라는 기념적인 한 해이기도 해서 이시바는 “평화를 위한 메세지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1995년 “전후 50년”에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힌 일본 정부였지만, 2015년 “전후 70년” 아베 담화를 통해 그 정신이 후퇴한 것으로 보였기에, 이번에 이시바가 “전후 80주년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담화는 보류됐고, 아직 퇴임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나 현 시점에서는 이시바의 개인적인 “견해” 형태로조차 실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시바가 총리가 되기 전에 보여주었던 신념이나 국가 비전 및 정책 대부분이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날 것 같다. 예를 들어 아베 정권기의 경제정책에 대해 공과(功過)를 검증하겠다고 했지만 총리 취임 후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자민당에 대한 정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자민당 내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한 것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이시바 총리도 자민당의 총재로서 자민당 내부 합의를 얻지 못하면 독단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던 것이고, 당내 기반이 약한 이시바였기에 더욱 그랬다. 한국의 대통령제와는 달리 의원내각제, 특히 일본의 자민당 정치에서는 총리가 바뀐다고 해서 외교 방침에 뭔가 큰 전환을 가져오기 쉽지 않다. 

일본 내에서도 이시바 총리의 사임을 두고 의문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두 번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지만, 선거 직후도 아닌 왜 지금에 와서 사임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자민당 내 반감이 상상 이상이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이시바 그만두지 말라”는 옹호론이 나오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민당 내 “이시바 끌어내리기” 분위기가 강해지는 가운데, 이시바 총리는 “당내 분단을 피하고 싶다”고 스스로 사임을 결심했다. 그런데 차기 총리를 일본 국민이 직접 뽑을 수 없다. 91만여 명, 일본 인구의 1%도 안 되는 자민당원들의 투표로 당총재가 선출되면 그대로 일본 총리가 될 공산이다. 그것이 의원내각제라는 제도이고, 일본의 총리가 자민당 내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대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며,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총리 선출 과정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차기 총리, 즉 자민당의 새 총재는 누가 될까? 총재 선거는 다음 달인 10월 4일 투개표가 이루어진다. 5명의 입후보자 중 유력한 후보로는 첫 여성 총리를 노리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 담당장관과 아버지에 이어 총리를 노리는 40대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현 농림수산부 장관이 있다. 다카이치는 고(故) 아베를 흠모해 보수층의 지지가 두텁고, 온라인상에서 인기도 높다. 반면 고이즈미는 젊고,
단정한 외모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기존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이 계파를 초월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두 유력 후보의 일본 내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만 둘 다 올해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 일본의 침략전쟁을 주도했던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한 바 있다. 고이즈미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위해 애쓰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에 대해 존경심, 감사함, 그리고 평화에 대한 맹세를 하며 참배하는 일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당연시한다. 이시바 총리가 원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오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 차기 정권이 “보수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도 고이즈미도 자신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현재, 총리로서 야스쿠니 참배를 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시바도 야스쿠니 참배는 해오지 않았지만 총리가 아닌 자민당 총재로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다마구시료(玉串料)”라고 불리는 헌금을 했다. 근년 자민당 총재의 선택을 따른 것이다.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다카이치와 고이즈미, 현 총리인 이시바의 개인 생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보이지만, 일본 총리가 되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총리가 되기 이전의 언행만을 가지고 이시바와 차기 총리를 비교해 일본 정권이 “보수화”된다고 단순하게 전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차기 정권이 들어서도 절대 달라질 게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필자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민당 정치를 지탱하는 일본 사회의 변화다. 한국 사회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지만, 경제적 침체, 인구 감소, 사회 속에 조용히 퍼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내향적인 논리나 배외적인 지향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 본 칼럼(https://www.ajunews.com/view/20250714064834998)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참정당(参政党)이 “일본인 퍼스트”라고 호소해 의석수를 대폭 늘린 것에서 볼 수 있는 배외주의 풍조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차별이나 배외주의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정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 무서울 따름이다. 

최근 그런 일본의 배외주의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 신초샤(新潮社)가 발행하는 유명 주간지 『주간 신초(週刊新潮)』 7월 31일호에 실린 다카야마 마사유키(高山正之)라는 저널리스트의 “창씨개명 2.0”이라는 제목의 글이 문제가 되었는데, 한반도에 뿌리를 둔 작가를 지목해 공격하는 글이었다. “일본 이름을 쓰지 말라”, “일본인을 가장해 일본을 깎아내리는 외국인은 배제하라”는 식의 차별 발언이 버젓이 게재된 것이다. 피해를 입은 작가 본인이 목소리를 냈고, 여기에 문학계, 일본 펜클럽 등 각종 단체가 잇따라 항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출판사는 마지못해 다카야마의 연재 중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그 칼럼에 대해 차별과 인권침해, 배외주의를 조장하는 것이었다는 인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려 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는 “보수화”라는 문제가 아니라 차별의 문제이며 배외주의의 만연과 조장이다. 문제는 일부 출판사나 특정 정치인 또는 정당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외주의나 인권침해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해 있다는 데 있다. 공공질서와 일본 본연의 문화를 지킨다 등의 그럴 듯한 말로 외국인에 대한 적대와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야 말로 경계해야 한다. 차별은 대부분의 경우 다수자에 의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면 당연히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여당이 어떤 연립정권을 구성하느냐 하는 변수가 존재하지만, 현 상황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그는 일본의 리더임과 동시에 자민당의 총재다. 좋든 나쁘든 그는 자민당 정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차기 총리도 현재 한일관계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굳이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지나친 기대도 지나친 경계도 불필요하다. 그것보다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혼돈스러운 지금의 세계정세 속에서 한일이 더 이상 “승패”를 겨루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한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 다양성 및 관용성과 배외주의 등과 같은 분단의 정치가 불러온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안이나 불만을 잊기 위해 이질적인 존재를 향해 혐오와 배제의 폭력을 행사한다. 한때만큼은 아니지만 수치스러운 일본 사회의 “혐한”은 아직도 뿌리 깊게 존재하며 때로는 앞서 언급한 『주간 신초』 사건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질적인 것을 향한 혐오와 배제의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가 있다. 한일 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현안들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를 놓고 양측이 혐오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

식민지 과거를 둘러싼 문제는 다양한 과제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피해자 구제와 존엄 회복의 문제다. 과거사 문제는 정치적 결단에 의해 해결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치적 대립에 휘말려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성가신 상황이 되기도 했다. 과거사를 둘러싼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한일 간의 “대립”에 의해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도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대립 끝에 있는 불모(不毛)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다. 서로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을 다시 마련하는 것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꼭 필요하다. 

한일 간에는 지금까지 60년에 걸쳐 서로 얼굴을 보며 쌓아온 관계성이 있다. 지자체의 자매교류나 젊은이들의 상호 방문 교류나, 경제인, 예술가, 연구자 등의 교류와 협업, 예술 행사, 전시의 개최 등 서로의 역사나 문화, 가치관을 접해보고 이해하는 기회들이 계속 늘고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일본 정부가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한 정보만 보더라도 올해 들어 200건 이상의 한일 공동 혹은 한일 관계 관련 행사가 열렸고, 연내에 70~80건의 행사가 더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노동 문제 등 식민지 지배 청산은 일본의 가해 책임을 묻는 문제이자 일본 시민들이 패전 후 한국 시민이나 재일동포들과 연대를 모색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일관계를 정부 간의 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일본의 차기 총리가 누가 될지도 중요하지만, 풀뿌리 시민 교류를 통해 한일관계를 뒷받침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일 국교정상화로부터 60년, 일본 식민지배 종식으로부터 80년, 다음 10년, 20년을 향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파트너로서 한국과 일본이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보다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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