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는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배드뱅크)'에 대한 실무적 논의가 시작됐다. 큰 틀에서는 프로그램의 추진 대상과 방식 등이 확정됐지만 심사 기준과 채권 규모 등에 대한 세부 사항은 결정되지 않아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 채무조정 기구인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10월부터 연체채권 매입을 개시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지난 11일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했고, 배드뱅크 운영 주체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17일 은행 설명회를 시작으로 보험·카드·저축은행 등 업권별 설명회를 할 예정이다. 배드뱅크가 실제 작동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부실채권 매입 규모와 적용 기준을 확정하는 것이 관건인 만큼 이 자리에서 채권 매입 가격과 심사 절차, 적용 대상 채무자 요건 등 핵심 사항에 대한 업권별 의견 수렴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금융당국은 과거 채무조정 프로그램 사례를 바탕으로 평균 5% 매입가율을 적용하면 약 16조원 규모의 빚 탕감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 무담보 채권에 대한 평균치일 뿐 연체기간, 금액 등 채권 성격을 고려하면 채권별 가격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이 밖에도 제도 설계 과정에서 조율이 필요한 사안들이 남아 있다. 우선 배드뱅크가 개인 신청을 받지 않고 일괄매입형으로 채권을 매입하는 형식이어서 별도의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 현행 신용정보법은 개인신용정보가 제3자에게 제공되기 전 신용정보주체에게 미리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도록 정하고 있지만 배드뱅크가 예외조항을 활용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도덕적 해이, 성실 상환자와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해 소득·재산 심사를 강화하기로 한 만큼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 구축도 함께 추진 중이다. 당국은 유흥업 등 부도덕한 부채 탕감 가능성, 외국인에 대한 과도한 지원 등 배드뱅크와 관련해 제기된 우려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실무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현장 소통을 통해 정책의 미세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17일 소상공인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부채 부담, 정책자금 공급 등과 함께 빚 탕감과 관련된 내용이 언급될 수 있다. 배드뱅크 설립 취지 자체가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인 만큼 이들을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들어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세부 방안을 3분기 중 발표하고 10월에는 연체채권 매입을 시작할 계획이다. 정책이 시행되면 장기 연체자 약 113만명이 채무조정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은미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배드뱅크를 통한 채무 탕감 과정에서 성실하게 상환을 해온 차주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배드뱅크 정책으로 인해 도덕적 해이가 확산되면 장기적으로 부실채권이 더 증가할 수도 있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교한 계획과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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