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칼럼] 극우 정치세력화, 남 얘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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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시사평론가] 
 
 
유럽 정치를 보면 ‘극우의 정치세력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총선과 지방선거, 유럽의회선거 등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은 한마디로 엄청나다.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극우정당이 원내 1당이나 2당에 올라서는가 하면, 이탈리아와 폴란드 사례처럼 아예 정권을 차지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극우라는 말만 들어도 깜짝 놀랄 것 같은 독일에서도 극우의 정치세력화는 놀라울 정도다. 지난 2월 총선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창당 12년 만에 집권연합(CDU·CSU)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52석을 차지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정당이 기록한 역대 최고 성적이다. 당의 상징적 인물인 바이델(A.Weidel) 공동대표는 입만 열면 ‘반이민’과 ‘반이슬람’을 외치는 레즈비언 정치인이다. 그의 친할아버지도 히틀러가 임명한 친나치 고위급 판사 출신이다.
어쩌다가 유럽은 물론 독일 정치까지 이렇게 극우로 흘러가고 있는지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극우의 정치세력화는 당분간 그침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 유럽 정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신호탄으로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잉태된 극우세력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이 학계, 언론계, 법조계, 문화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극우세력은 우리 사회 내부에 넓게 포진돼 있었다. 번지르르한 외양과 전문가다운 지성의 내면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극우의 본성’을 키우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불과 몇만 명 수준이 아니다. 많아도 너무 많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극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사회적·학술적으로 합의된 것도 아니다.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유럽의 극우와는 많이 다를뿐더러 과거 제국주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일본의 극우와도 다르다. 광복 이후 친일세력이나 반공세력과도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극우의 정치세력화는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큰 흐름에서 본다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희생양 찾기’에 몰입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슈에 대해 적대와 혐오를 조장해서 ‘공공의 적’을 만들어 낸다. 둘째, 상식과 합리를 경멸하고 법치마저 조롱한다. 이를 위해서는 궤변과 억지, 음모와 폭력도 불사한다. 셋째, 보수정당을 지지하며 종교적·역사적 편향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극우와는 소통 자체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 극우는 대체로 이런 점들을 공통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극우의 정치세력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근본적 배경은 ‘정치의 양극화’에 있다. 한마디로 ‘진영 대결’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지역, 이념, 세대, 빈부 갈등이 이미 구조화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두 진영 외에는 중간이 없기 때문에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 충돌이 강할수록, 보수에게 유리할수록, 그리고 상대를 향한 적의가 선명할수록 극우의 공간은 더 커진다. 여기서는 ‘정치의 영역’이 존재할 수가 없다. 윤석열 정부가 딱 그랬다. 그때보다 극우세력이 더 활개를 친 적은 없었다. 오랫동안 배제됐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 곳곳에서 극우의 몰골들이 그들의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 핵심이요, 상징이다. 혹여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는 어떻게 됐을까. 극우의 정치세력화에 하나의 이정표가 됐을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과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헌정질서의 정상화, 정치의 복원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임기 초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60%를 넘는 것도 ‘비정상의 정상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절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다수의 극우세력이 잠시 후퇴했을 뿐이다. 그동안 핏대를 세우던 극우인사들도 잠시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 큰 실정을 하거나 위기로 몰릴 경우 극우세력은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할 것이다. 침묵하던 극우인사들도 앞다퉈 뛰쳐나와 ‘이재명 탄핵’이니 ‘하야’니 하면서 정권 교체를 외칠 것이다. 바로 그 때가 극우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혹자는 설마 할 것이다. 유럽의 일부 극우는 이미 그렇게 성공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이재명 정부는 여러 방면에서 취약하다. 일각에서는 국회의 과반 의석과 지방권력, 압도적 대선 승리를 근거로 역대 가장 강력한 정권의 탄생이라고 하지만 겉모양만 그럴 뿐이다. 정권의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상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근의 민생위기를 권력의 의지만으로 풀어내기엔 너무도 어려워 보인다. 워낙 윤석열 정권에서 망쳐 놓은 것이 많다. 폭탄급 가계부채와 역대급 재정 악화, 내수경기 붕괴와 지역경제 몰락, 게다가 1%대 경제성장률과 재앙 수준의 경제 양극화는 우리 경제의 숨통을 끊을 태세다. 자칫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던 것도 이런 배경이다. 여기에 더해서 ‘정치의 실종’, 외교 및 안보의 부채까지 합치면 그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이 모든 부채를 그대로 이어받은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강력한 정권일 수 있겠는가. 흔히 하는 말로 ‘한 방이면 훅 간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극우세력은 이재명 정부의 실패, 아니 임기 중 퇴진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다시 그들의 정치세력화가 본격화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 임기 내내 비난과 공세, 적대와 음모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도 불사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윤석열과 그들’이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 대목을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거대한 악의 뿌리’라고 직격했다. 그렇다면 ‘극우의 대역습’이 오기 전에 바로 그 뿌리부터 발본색원해야 한다. 법적·정치적·경제적으로 모든 합법적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표현한 대로 ‘잔뿌리’까지 끊어내겠다는 각오 없이는 너무 불안하고 위험하다. 지금 못하면 내년엔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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