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권력 쟁취를 위해 대중인기에 영합하는 선동적 정치운동을 대중인기영합주의 또는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국가를 올바르게 이끌기보다는 우선 권력을 잡기 위해 현금살포 등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과 정책을 내세운다. 이 포퓰리즘의 가장 큰 독소는 국민대중의 눈과 귀를 멀게 해서 한번 포퓰리즘에 취한 국민들은 좀처럼 포퓰리즘에서 헤어나기 힘들고 그 결과 포퓰리즘을 시정해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려고 하는 정당보다 포퓰리즘을 주장하는 정당이 계속 집권하게 되어 결국은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우선 국민통합보다는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언론 등 여러 면에서 소수의 타락한 지배계급과 고통받는 다수의 착한 서민대중으로 구분한다. 부유층과 빈곤층, 대기업과 중소기업, 일류학력과 보통학력, 주류언론과 비주류언론, 1%와 99% 등이다. 그런 다음 서민대중의 고통이 소수지배계급 때문이라고 적대감을 조장하면서 지배계급 타도가 곧 민주주의 길이라고 강변한다. 포퓰리스트 본인들은 서민대중의 편에 섬으로써 가장 민주적인 것처럼 위장한다.
여기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함정이 있다. 우선 누가 국민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처럼 사회가 디지털화되어도 5천만 국민 목소리 모두를 들을 수는 없다. 결국은 국민 전체보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친숙하고 결집력과 행동력이 강한 일부 젊은 네티즌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고 침묵하는 다수가 무시되는 비민주성을 내포하게 된다. 심지어 이들을 이용하여 포퓰리스트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포퓰리스트들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이유다. 이른바 디지털 포퓰리즘에 토대를 둔 사어버민주주의의 비민주적 위험성이다.
뿐만 아니라 설혹 다수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었다고 하더라도 속성상 전체보다는 개인, 장기적 안목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개개인 선의 합이 전체적이고 장기적으로 보아야 하는 국가 전체의 공동선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부 제공 사회서비스나 현물급여 등 복지혜택은 많이 받을수록 개개인에게는 선이겠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재정파탄 등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남유럽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아르헨타나는 세계 5위의 부국이었다. 그러나 제29대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이 등장하면서 페로니즘으로 불리는 엄청난 포퓰리즘으로 아르헨티나는 몰락했다. 후안 페론은 재임 중 기간산업의 국유화, 외국자본 축출, 노동자 처우 개선 등 사회주의적 대중영합 정책을 펼쳤다. 이른바 페로니즘이다. 무리한 선심성 정책은 국고를 탕진했고 인플레이션과 실업난을 야기했다. 결국 후안 페론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전히 페로니즘에 대한 향수가 잔존한다.
'신들의 나라'로 불리는 그리스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들이 버린 나라가 됐다. 공공부문 중심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부채에 옴짝달싹 못하며 사실상 '국가부도'에 이르러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 2012년 유럽연합(EU)에 손을 벌렸고, 2018년 구제금융 체제에서 졸업했다. 그리스 정부의 '퍼주기 정책', 즉 포퓰리즘은 사태 원흉으로 비판됐다. 그리스는 쉽게 빌린 돈을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투자하기보다는 최저임금 확대, 공무원 수 증원, 무상의료와 연금 확대 등에 지출을 집중했다. 공공부문 지출을 중심으로 부채를 쌓아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직격탄을 맞아 결국 재정위기를 맞았다. “국민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해 주어라” 파판드레우 총리의 이 말은 포퓰리즘을 대변하는 명구가 되었다. 마침내 그리스는 항구를 비롯한 주요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역사적 유물들도 내다파는 신세로 전락했다.
요즘 경제위기국의 대명사로 떠오른 베네수엘라는 한때 남미의 부국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의 1980년 국가별 1인당 GDP를 보면 베네수엘라는 4671달러로 세계 37위로 5000달러였던 싱가포르 수준이었다. 2366달러의 대만, 1715달러의 한국보다 월등히 잘사는 나라였다. 남미에서는 8361달러의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잘사는 자원 부국이었다. 석유매장량(2019년말 기준)이 3038억 배럴로 전 세계에서 17.5%로 17.2%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인 자원부국이었다. 석유의존도는 수출의 95% 재정수입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높다.
2004년에는 ‘라디오와 TV의 사회적책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정부의 미디어 검열조항을 두어 언론을 장악했다. 국가미디어를 확장하고 친정부언론에 12배나 많은 정부광고를 배정하는 등 언론 길들이기를 본격화했다. 그런 다음 차베스가 직접 출연하는 ‘안녕 대통령’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다양한 현장활동 방송을 통해 대중선동을 본격화했다. 지역 풀뿌리 조직으로 주민자치위원회를 만들어 정부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해 막강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삼권을 모두 장악하고 선관위 언론 지역풀뿌리조직까지 장악하니 가히 무소불위의 정권이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퍼주기식 과도한 복지로 재정과 경제가 파탄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입 대비 사회지출이 1998년까지는 36% 내외를 지속해 왔으나 1999년 이후에는 60%대로 급증했다. 이를 대부분 석유수입으로 메워왔으나 중동전쟁이 끝나고 석유가격이 하향안정화되고 설상가상 서방 석유시추회사들을 추방하고 국유화한 시출시설마저 작동되지 않으면서 재정과 경제가 파탄나기 시작했다. 주요 산업 국유화 등 반미 사회주의정책 강화도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생산은 급격히 위축되었는데 막대한 재정살포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드디어 물가상승률이 2015년 122%, 2016년 255%, 2017년 438%로 오르다 2018년에는 6만5374% 2019년 1만9906% 2020년 2355% 2021년 1589%로 폭등하며 마침내 경제 재앙을 가져왔다. 빵을 하나 사려면 돈을 한 바구니 가져가야 했고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월말에 임금을 받아 보았자 이미 물건값이 55배나 올라 있으니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돈이 가치가 떨어져 거리에 휴지조각처럼 흩날리는 모습들이 언론매체에 등장하곤 했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행정 입법 사법부는 물론 선권위 언론까지 장악하고 대부분의 기업도 국유화한 차베스는 무소불위로 4선까지 대통령을 한 끝에 2013년 암으로 사망하고 그 후임에 마두로가 대통령을 이어 받아 지금까지 26년째 폭정을 이어오고 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는 2013년부터 1인당 소득이 하락하기 시작해 2023년에 3659달러로 1980년보다 낮은 세계 135위 최빈곤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 정도로 경제와 민생이 파탄났는데도 행정 입법 사법부를 장악하고 선권위 언론까지 장악한 무소불위의 정권은 견고한 난공불락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난민이 되는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300만여 난민들이 걸어서 이웃 콜롬비아 중남미 멕시코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도달했지만 미국 국경에 높은 장벽이 쳐지고 입국을 거부 당해 다시 본국으로 걸어서 돌아가다 거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몇 개월째 노숙을 하거나 작은 보트에 너무 많은 난민들이 타서 익사하는 모습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마치 북한의 탈북민들이 중국 등지를 떠돌며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숙연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차베스 마두로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은 요지부동이다. 무분별한 복지와 막대한 재정살포 그리고 이를 지지해 준 유권자들의 대가는 이처럼 참혹했다.
이와 달리 스위스에서 2016년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80만원)을 모든 성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 도입안을 국민투표에 부쳤고, 투표 결과 국민의 77%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공짜 돈 나눠 주면 통화 증발로 물가 불안을 초래하고 결국 시장경제의 가치 배분 기능이 교란될 것이라고 판단한 국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적어도 선진국에선 좌파의 무책임한 기본소득 주장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결국 유권자인 국민이 혜안을 가지고 잘 식별해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이달 말부터 전 국민에게 최소 15만원, 최대 5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될 전망이다. 우선 전 국민에게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소비쿠폰 발행에 들어가는 국비 지원 예산 규모가 1조9000억원가량 늘었다. 70~80%였던 국비 부담률을 최대 90%까지 늘리고, 비수도권과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1인당 3만~5만원을 더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비쿠폰은 두 차례에 걸쳐 신용카드,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등으로 지급된다. 개인별 소득과 거주지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1차로는 소득 상위 10%와 일반 국민에게 15만원씩,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각각 30만원, 40만원이 지급된다. 2차로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전 국민에게 10만원씩을 추가 지원한다. 아울러 1차 지급 시 비수도권 국민은 3만원, 농어촌 인구감소지역(84개 시군) 거주자는 5만원을 각각 더 받는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소득 상위 10%는 최소 금액인 15만원을, 농어촌 낙후지역의 기초수급자는 최대 55만원을 받게 된다. 애초 정부는 소득별 차등 지급과 인구감소지역에 2만원씩을 더 주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역 국민에게 3만원씩 추가 지원하도록 바꿨다. 정부안의 중앙정부 지출액은 10조2967억원이었는데, 비수도권 추가 지원과 지방자치단체 국비 보조율 상향을 통해 약 1조8742억원 늘어난 12조1709억원이 될 전망이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업과 제조업 등 기반 산업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글로벌 통상 불안으로 수출까지 위축되면서 내수와 대외 수요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즉각적인 소비 진작 효과가 기대되는 현금성 쿠폰 지급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1년간 0.2%포인트의 성장률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연내로 한정하면 0.1%포인트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소비쿠폰 외에 보육, 기후 분야 예산을 정부안에 추가 반영했다. 0~2세 및 장애 영유아 보육료가 1131억원 증액됐고, 친환경 무공해차 사업은 1조1378억원에서 1050억원 늘었다.
대통령실과 법무부, 감사원, 검찰의 특수활동비도 105억원 증액됐다. 이 부분을 두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편성했던 올해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민주당은 대통령실 등 특활비를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추경이 1조3000억원 증액되면서 정부 재정건전성은 더 악화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110조4000억원에서 111조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9%에서 49.1%로 나빠졌다. 증액된 1조3000억원을 모두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의 재정사정은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 채무)의 GDP 대비 비율은 추경 전보다 1.0%포인트(p) 증가한 49.1%로 높아질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 비율은 2011∼2019년 30%대를 기록하다가 2020년 40%대로 진입, 2022년 49.4%로 늘었다. IMF가 재정통계매뉴얼에서 권고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overnment debt) 기준으로는 이미 GDP 대비 100%를 크게 상회해 위험수위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이 과도하면 나라 미래를 망치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전체주의와 상통하고 마약 같은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도 스위스 국민들처럼 선진국 국민답게 깨어 나야 할 때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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