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정부가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KF-21의 엔진 개발 사업에 자국 방산업체 롤스로이스를 내세우며 본격적인 로비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영국 정부 관계자들이 미국 GE 에어로스페이스 대신해 롤스로이스가 주력 엔진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도록 로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영국이 자국 방위 산업 기반 재건을 위해 급성장하는 한국의 방산 분야와의 긴밀한 협력을 모색하는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한화 에어로스페이스는 GE의 라이선스를 받아 KF-21 전투기에 탑재될 현세대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국가 안보 관련 수출 규제로 인해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등 잠재적 구매자에게 이 전투기를 판매하는 것은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 독자적인 전투기 엔진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 한화와 국내 경쟁사인 두산에너빌리티가 2030년대 중반 생산 예정인 차세대 KF-21의 엔진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만 F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 기업들이 2030년대 중반까지 완성도 높은 전투기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짚었다. 이에 영국 업체인 롤스로이스가 KF-21 엔진 개발에 파트너로 참여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롤스로이스 참여는 프로젝트 위험을 줄이고 개발 일정을 앞당길 것”이라며 “단순히 엔진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함께 신형 엔진을 개발하고 엔진 수명 종료 시점까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롤스로이스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미 인도의 국산 제트엔진 개발 사업 참여를 추진 중이며 다른 국가들의 전투 능력 개발을 지원하는 기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영국 정부 관계자들은 롤스로이스 대신에 정부가 공동생산 제안을 하는 것이 세계 10대 무기 수출국 중 하나인 한국과 더욱 긴밀한 국방 조달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도 영국 방산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한 상태다. 롤스로이스는 이미 한국 해군의 호위함에 가스터빈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KF-21의 탈출 좌석은 영국 방산기업 마틴 베이커사가, 미사일 시스템은 영국 BAE 시스템스가 참여한 유럽 컨소시엄인 MBDA가 공급한다. 또한 한화는 BAE 시스템즈와 협력해 영국에 군수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영국 정부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은 중요한 산업 파트너이며, 우리는 향후 협력 기회를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수십 년간 맺어온 안보 동맹이 변수다. 한화는 미 해군과의 함정 건조 계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배치된 미 전투기의 엔진 정비 및 수리 계약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과의 방산 계약 확대를 통해 약 550억 달러(약 76조원)에 이르는 대미 무역흑자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완화하려는 전략을 고려하고 있다.
GE 역시 KF-21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GE는 차세대 엔진 개발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대변인은 “GE 에어로스페이스는 60년 이상 한국의 신뢰받는 파트너”라면서 “검증된 전문성과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한국의 방위 산업을 지원하고 향후 프로그램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 방위사업청은 “해외 엔진 제조업체와 엔진을 공동 개발할지, 또는 어떤 해외 기업과 협력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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