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대북 특사를 파견하라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새 정부 출범 2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가 확실하다. 접경지역 대북 방송 중단에 이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강하게 대응할 태세다. 이 대통령이 표방하는 정책은 ‘실용주의’다. 취임과 함께 그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 대전환의 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겠다”고 했다. '실용'은 실제적인 효과와 그 유용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념이나 가치보다 국가의 실질적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평화가 아무리 비싸도 전쟁보다 낫다”고 말한 것은 남북한 사이에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인 협력 기반 마련이 목표임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외교와 국제 관계에서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 정책 노선을 택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멀게는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실리를 추구한 광해군의 중립 외교를 들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도 이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경제적 협력을 추진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미지를 강화했다는 차원에서 볼 때 그렇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적 균형자론’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상호 의존도를 높이고, 북한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면서도 남한 기업들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던 점에서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9·19 군사합의 또한 상호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려고 했던 점에서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적 대북 접근에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 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북 방송 중단에 북한이 즉각적으로 대남 귀신 소리 방송을 중지하긴 했으나 남한과 그 어떤 관계도 형성하지 않겠다는 ‘남북 적대적 두 국가론’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 이와 같은 대남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진보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에 크게 실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은 그렇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대북 강경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데 따른 일종의 배신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미 회담 전 평양공동선언(2018.9)을 통해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할 경우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와 함께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취하겠다는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고 합의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서 역대 최대 수준의 첨단 무기를 도입한 것이 큰 실망감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라고 해도 대북 실용주의적 접근이 어떻게 전개될지 두고 보려는 심산일 것이다. 현 단계에서 북한을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하루라도 빨리 남북 관계에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대북한 비밀 특사 파견이 하나의 중요한 실용주의적 조치라고 본다.
 
남북한 사이에 비밀 특사를 파견한 사례는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남북 관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주목해 볼 만하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북한 송호경 부위원장을 중국에서 비밀 접촉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6·15)을 조율했다. 2003년 1월에는 북한의 NPT 탈퇴 직후 북핵 위기 대응을 위해 임동원 대통령 특보를 파견해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을 만나 6자 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외교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기였던 2003년 가을에는 민간인 문성근씨를 비밀 특사로 파견했던 사례도 있었다. 당시 남북 관계는 대북 송금 특검 등으로 인해 경색된 상태였다. 문씨는 남북 관계를 전진시키려는 노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함께 대화와 협력에 대한 진정성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2007년 8월에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두 차례나 비밀 특사로 방북해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과 만나 동년 10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10·4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은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개성공단 확대 및 서해 직항로 개설, 철도·도로 연결 및 공동이용과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 등에 합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때에도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기 위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공개 특사단 5명을 공개 파견(2018.3)한 적이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2017.9)과 ICBM급 미사일 발사로 국제적 긴장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북·미 간 대화를 중재해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2018.6.12)을 수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대북 특사를 통한 비밀 회담은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남북 간 신뢰를 쌓고 중대 합의에 이르는 첩경이다.
 
대북 특사 파견은 상징성이 큰 외교적 조치다. 하지만 현 상태의 남북 관계에서 특사 제안 방식과 접근에는 이에 상응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남한에 대한 북한의 회의적이며 비판적 시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대리인’로 보고 있다. 남한이 독자적 결정을 내리기보다 미국의 입장을 대신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 특사 파견의 의도나 진정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체면과 전략적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북한으로서는 공개적인 제의보다는 비공개 협의로 시작하는 것을 더 선호할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한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 채널이 부재한 상태인 점을 고려해 대북 특사 파견을 위한 간접적 접촉 채널의 선택을 고려해 봄 직하다. 유엔 및 국제기구 또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경유해 비정치적 분야의 협력과 남북 대화 복원을 위한 특사 파견을 타진하는 것이다. 셋째,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사전에 갖추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일정 조정이나 일시 유예하는 결정도 남북한 대화에 크게 유의미하다고 본다. 그 밖에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금지 조치도 북한의 수용을 얻어내는 데 일조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의 표출이다. 최고의 실용주의는 최선의 진정성에 있다. 특사 파견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으로 하루빨리 북한을 라오스나 캄보디아 등 다른 외국과 같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한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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