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표현의 자유 vs 온라인 린치…법원, '블랙리스트 유포' 전공의 실형 선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해외 사이트에 퍼뜨린 전공의에게 실형이 선고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사이의 경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임혜원 부장판사는 12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공의 류모(32)씨에게 징역 3년을, 게시 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32)씨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 및 의대생 2974명의 실명을 특정해, ‘페이스트빈’, ‘아카이브’ 등 해외 사이트에 21차례 반복 게시했다”며 “명예훼손과 스토킹 행위가 결합된 악의적 공격이며, 피해자 다수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의 대립

이번 사건은 의료계 집단행동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 고발 또는 문제 제기 성격의 행위가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가늠할 기준이 될 수 있다. 특히 법원이 표현의 자유보다 피해자 보호와 반복성, 위협성을 더 중시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류씨 측은 항소심에서 명단 공개의 공익성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시의사회는 선고 직후 성명을 통해 “해당 행위는 의료계 내부의 불공정과 위선을 고발한 것이며, 이번 판결은 정치적 판결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항소심에서 법률 대응팀을 구성해 대응할 것”이라며 대한의사협회 등과 연대한 공동 대응도 시사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익 목적의 비판을 포함해 폭넓게 보장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허위 사실을 반복적으로 유포하거나,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익성과 무관하고 비방 목적이 뚜렷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 방향이다.

실명 공개와 반복 게시, 특정인을 겨냥한 비방 표현은 명예훼손 책임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의료계와 같은 전문직 내부의 문제제기라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실명으로 공개되는 방식은 사적 제재나 린치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언제 위법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한 법리적 기준 정립이 요구된다.
 
의료계 집단행동, 형사책임 이어질까

의료계 집단행동은 기본권으로서의 파업과 표현행위 사이의 긴장을 내포한다. 2020년 전공의 사직 사태 당시에도 내부 명단 작성·공유를 두고 개인정보보호법 및 명예훼손 혐의 논란이 있었다.

이번 사건은 실명 공개와 반복 게시, 그리고 스토킹 요소가 결합된 행위가 형사처벌로 이어진 사례라는 점에서, 의료계 내부 통제와 징계 수단이 형사책임과 충돌할 여지를 시사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명단공개를 넘어 ‘비방 목적의 반복적 행위’와 ‘실명 공개에 따른 정신적 피해’가 결합된 점이 판결의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사안은 향후 재연될 소지가 높다.

이 경우 △사실의 적시라도 공익 목적이 아닐 경우 명예훼손 성립 가능 △허위 여부보다는 반복성, 실명성, 공개 범위 등이 위법성 판단 요소 △제보자의 동기와 방식, 표현의 정도가 형사처벌 수위를 좌우 등이 기준으로 작용한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공익을 위한 제보’보다는 ‘대규모 실명 비방의 반복성’을 더 중하게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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