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숫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지난해 행복주택 2368가구 입주자 모집에는 7만명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29.7대 1. 지역에 따라 청년은 900대 1에 육박했고 신혼부부도 많게는 700대 1까지 치솟았다.
실제 수요는 더 분명하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과 잠시만 이야기를 나눠봐도 적절한 입지에 감당 가능한 가격의 임대주택을 얼마나 절실히 찾고 있는지 알 수 있다. SH와 LH 홈페이지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된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의 공급량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시장의 관심은 여전히 서울 강남과 용산의 고가 아파트, 재건축과 분양에 머문다. 신도시를 만들고 공원을 밀어 공급하는 수십억 원짜리 주택으로는 임대주택 수요를 흡수할 수 없는데도 정책은 매번 같은 방향을 반복한다.
그동안 임대주택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일정 기간 전세로 살거나, 수십 년에 걸쳐 지분을 갖거나, 건물만 소유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공공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최초 입주자에게 시세 차익이 귀속된다. 두 번째 입주자부터는 시장가가 적용될 뿐이다. 일부는 ‘로또 주택’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혜택이 첫 번째 입주자에서 끝나는 구조라면 어떤 방식을 써도 결과는 같다.
필요한 것은 구조의 전환이다. 혜택이 한 번에 끝나는 구조에서는 경쟁과 박탈감을 피할 수 없다. 핵심은 ‘지속성’이다. 한 번 입주하고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생애 주기에 맞춰 이동하고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소득이 늘었다고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주거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주택은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다음 입주자까지 이어지는 주거여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형 공공주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싱가포르든 덴마크든 해외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답은 아니다. 한국의 전세 제도와 자산 구조, 높은 이동성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임대나 분양만으로는 수요를 담아낼 수 없다. 임대와 소유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거주를 중심으로 재설계된 주택이 필요하다.
만약 특정 지역에 공공주택을 공급했을 때 그 시세 차익이 개인에게 100% 귀속되는 대신 기금으로 순환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감정가 10억원짜리를 5억원에 입주했을 때 주택가격이 12억원으로 오른다면 본인 지분(50%)에 해당하는 차익 1억원만 가져가고 나머지 1억원은 기금으로 돌아간다. 기금에 들어간 1억원은 다음 입주자의 진입 문턱을 낮춘다. 공공주택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나눠 쓰는 기반이 된다.
이 기금은 단지와 지역을 개선하는 재원이 된다. 공공이 지분을 계속 보유하면 자산 가치 하락은 곧 공공의 재무적 손실로 직결된다. ‘팔고 나면 끝’인 지금과 달리 공공이 집값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단지를 관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유인이 생긴다.
순환이 작동한다면 공공주택은 ‘당첨’이 아니다. 기반이다. 낙후된 임대주택이라는 통념도, 임대라는 이유로 언제든 떠날 사람처럼 취급받는 일도 없어진다.
한국형 공공주택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이미 드러난 수요에 맞게 구조를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임대주택은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방식이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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