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적인 반도체 가치사슬 구축을 위한 미국·일본·대만 간 3각 동맹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반대편에 선 중국은 메모리와 비메모리 관련 기술·노하우를 축적하며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사이에 끼인 채 동맹 합류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갈라파고스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한국 메모리로 삼분돼 있었다. 여기에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내수 중심으로 자체 칩 생산에 집중하고, 일본은 소재·부품·장비를 중심으로 한 공급망을 강화하는 구조다.
미국의 중국 배제 전략이 판도 변화로 이어졌다. 바이든 행정부 때 윤곽이 드러난 미·일과 대만의 반도체 동맹 전략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인공지능(AI) 이슈까지 접목돼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소프트뱅크와 인텔은 한국이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대체할 차세대 AI용 메모리 개발에 나섰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가 주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도 있다. 4년간 50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AI 데이터센터 10개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내년부터 가동 예정이다.
파운드리 분야는 일본 라피더스가 미국 IBM의 초미세공정 기술을 지원 받아 홋카이도 지토세 공장에서 2나노급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 시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2027년 양산이 목표다. 파운드리 최강자 TSMC도 미국과 일본에 각각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같은 3각 동맹 흐름에 한국은 한발 물러서 있다. 그사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메모리 분야에서도 거센 추격을 받는 처지가 됐다. 중국 최대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저가 범용 제품을 시장에 대거 쏟아내며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내재화율도 2020년 5%에서 올해 21%로 5년 만에 4배 이상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메모리 3위였던 미국 마이크론은 HBM을 중심으로 투자 확대에 나서며 턱밑까지 쫓아왔다. 마이크론은 싱가포르에 10조원 규모의 HBM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고 일본 히로시마에도 내년 가동을 목표로 HBM 공장을 짓는다.
위기가 짙어지는 국내 반도체 업계는 새 정부 출범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연내 반도체특별법 제정이 최우선 과제다. 반도체 인력 양성, 최대 10% 생산세액 공제, 연구개발(R&D) 지원책 등이 담긴 법안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현재 시급한 과제는 반도체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라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정책 추진 속도를 높여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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