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칼럼] 개국 30년 TV홈쇼핑…규제 풀어 자립을 허(許)하라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교수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교수),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올해 8월 1일이면 TV홈쇼핑이 첫 방송을 내보낸지 30년이 된다. 1995년 8월 1일, 케이블TV 채널 39‧45번에서 2개 사업자가 뻐꾸기시계와 만능리모컨을 판매했다. 이제는 거래액 20조원 규모의 유통산업으로, 유료방송산업에 매년 2조원 이상을 충당하는 방송산업의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데이터홈쇼핑까지 포함하면 12개 사업자 17개 채널로 커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업황 추이를 보면 홈쇼핑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역할과 기능을 못할 것 같다. 업황 지표들은 15년 전 수준으로 추락했다. 사람으로 치면 자립해서 가정을 꾸려도 모자랄 시기지만 보살핌이 필요한 청소년 시절로 다시 돌아간 형국이다.
 
 
■ 업황은 악화되고, 규제에 꽁꽁 묶여...
 
7개 TV홈쇼핑사업자의 거래액‧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코로나19 때보다 급락하여 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심각하게 악화됐다. 방송매출액은 2011년 이후, 영업이익은 2009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거래액은 20조원선이 무너졌고, 방송매출액은 몇 년째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면 방송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송출수수료 비중은 73%에 이른다. (한국TV홈쇼핑협회 발표 업황 자료. ’25. 4. 14.) 성장은 커녕 연명을 걱정할 처지다.
 
사람 체중보다 배낭무게가 더 무거운 형국이 현재 홈쇼핑이 처한 규제 상황이다. 2022년 시행령 개정으로 재승인기간은 기존 5년에서 7년으로 늘었지만 세부적인 규제개선 내용은 미정이라고 한다. 여전히 특정 기업군을 얼마나 방송해야 하고, 판매수수료율은 얼마나 줄일 것이며, 어느 단체‧기관에 얼마를 기부할 것인지 계획을 짜고 과기정통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홈쇼핑 재승인사업계획 작성자는 미래학자든지 소설가여야 한다. 지금처럼 AI가 세상을 주도하고 쿠팡이 온오프라인 유통산업을 평정할 줄 7년 전에 누가 예상했겠는가?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7년짜리 사업계획서는 불가능하다. 현실은 웬만한 법률서적보다 두꺼운 7년짜리 계획을 미주알고주알 세워 제출해 승인받아야 하고, 사업계획은 한치 흩트림 없이 지켜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매년 그 많은 항목을 지켰는지 점검한다. 사업환경이 급변해도 사업계획의 문구 해석은 경직되고, 정부 담당자에 따라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처분도 부과된다고 사업자들은 답답해한다. 실적 점검 과정은 정부나 사업자나 자원과 역량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홈쇼핑은 방송이라는 플랫폼을 사용하지만 본질은 상거래를 하는 유통업이다. 면세점이라는 특수업종을 제외하고 허가‧승인이라는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를 받는 유통업은 없다. 홈쇼핑이 유통산업에서 살아남아야 방송에도 기여할 수 있다.
 
 
■ 규제를 풀어 자립 계기를 마련해야...
 
홈쇼핑이 잘 되어야 유료방송산업, 나아가 전체 방송산업이 잘 될 수 있다는 점은 이제 부인하기 어렵다. 매년 2조원이 넘는 송출수수료가 급격히 줄어들면 유료방송산업은 존폐를 걱정할 수도 있다. 상생하려면 우선 홈쇼핑이 잘 되도록 하는 정책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장기적으로 재승인심사를 없애자. 당장은 7년짜리 재승인심사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편성비중, 판매수수료율 제한, 투자‧채용‧사회공헌 계획 등을 아주 간소화하거나 바꿔야한다. 홈쇼핑이 중소기업 판로확대에 큰 기여를 해온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현재처럼 중소기업 편성비중만 고집하면 이미 많은 기회를 받은 중소기업에게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하는 불합리를 낳는다. 중소기업 판매수수료율의 단계적 인하는 관료들의 성과 보여주기 용도이지 납품업체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요즘 정책의 관심 대상은 소상공인이다. 홈쇼핑으로 이들을 지원하자는 주장이 거세다. 중소기업도 성공이 어려운 홈쇼핑에서 소상공인이 성과를 내긴 쉽지 않다. 대신에, 편성비중, 판매수수료율 의무 부과보다는 지방업체 발굴에 홈쇼핑사업자가 노력하도록 집중하자. 경북 산불 때 지역사랑기부제를 신청하려고 보니 기념품으로 제공하는 지역가공품 중에 눈길 가는 곳이 더러 있었다. 홈쇼핑의 멘토링을 받으면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이미 꼬막장, 산나물팩 등 홈쇼핑이 일궈낸 상품이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더불어 기존 규제+a를 줄여주는 인센티브로 판로 개척, 지역경제 활성화 등 사업자의 새로운 도전을 유인해야 한다.
 
둘째, 사실상 홈쇼핑으로 기능하는 신사업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데이터홈쇼핑이 2012년에 채널번호를 받아 첫 방송을 한 이후 지금은 TV홈쇼핑과 사실상 차이가 없어졌다. 2021년에는 케이블TV가 ‘지역채널 커머스’라는 실증특례를 받아 제한적 홈쇼핑방송을 여태껏 하고 있다. 절차의 공정성, 내용의 형평성을 갖추지 못한 데이터홈쇼핑 생방송, 케이블TV 지역채널 커머스 정책‧제도 변경은 홈쇼핑 업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오처방이 될 수 있다. 특례 허용이 누적되면 너도나도 명분을 앞세워 TV에서 물건을 팔겠다고 나올 수 있다.
 
차라리 승인제를 폐지하여 시장이 기업의 진입‧퇴출을 결정하면 어떨까? 정부의 권한 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송으로 물건 팔겠다는 사업 또는 제안에 대해 과기정통부의 중장기적 입장은 어떤지 분명히 밝혀주는 게 필요하다.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여 본업에 충실해도 모자랄 판에 사업자들이 외부 환경이나 정책결정자의 눈치를 살피는 데 과도한 자원을 쓰는 일은 줄여야 한다.
 
셋째, 정부는 방송의 공적책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지상파 사업자가 지향해야할 가치와 공적 책무는 물건 파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그것과는 무게감과 내용도 다르다. 홈쇼핑과 유료방송사업자간 갈등이 생기면 홈쇼핑은 어느새 KBS급 대우(?)를 받고 상거래방송은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월드컵 경기가 된다. 홈쇼핑 17개 채널 중 일부가 몇몇의 케이블TV‧IPTV에서 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시청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다른 홈쇼핑채널, 홈쇼핑사 모바일앱, 다른 온라인쇼핑 등 대체제가 수두룩하다. 홈쇼핑이 계약한 유료방송채널은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개미지옥이 아니다. 송출계약이 끝나면 재계약 여부는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다.
 
 
■ 새정부 출범 계기로 새로운 30년을 그리자
 
지난 30년간 홈쇼핑은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과 같이 성장해왔다. 짧은 방황은 있었지만 크게는 유통과 방송에서 나름 인정받는 청년으로 컸다. 홈쇼핑 입장에선 TV 자체를 적게 보고 스마트폰 중심으로 세상이 바뀐 것 때문에 많은 것이 어려워졌다. 이런 변화는 홈쇼핑 스스로가 적응하고 이겨내야 한다.
 
현재 홈쇼핑에 대한 규제의 목적은 기능하고 있는가. 시장 진입과 경쟁을 제한하여 자원은 합리적으로 배분되고 산업은 성장하던 단계는 막을 내렸다. 중소기업 판로확대라는 정책목적 정도는 달성하고 있지만 유료방송산업의 버팀목 역할은 계속 작아질 것이다. 기계적인 승인과 점검을 반복하는 규제가 계속되고 이것이 산업의 활력을 방해한다면 단념하는 게 맞다. 재승인 관련 규제를 대폭 줄이고 바꾸자. 상징적으로 법률서적만큼 두꺼운 사업계획서를 시집처럼 얇게 줄이자. 규제에 대한 정부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아주 강렬한 사례를 과기정통부가 앞장서서 만들어보자.
 
올해는 TV홈쇼핑이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시기다. 마침 6월이면 새정부가 출범한다. 오는 8월 방송 송출 30년이 되는 날에는 의욕 충만한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 개선방안을 보고 싶다. 더불어 31세 ‘홀로서기’에 나설 홈쇼핑사업자의 굳은 의지를 기대한다. 유통‧방송산업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향후 30년의 TV홈쇼핑을 그려본다.


 
정연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석사 △연세대 경영학과 박사 △단국대 경영대학원장 (교수)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전 한국유통학회 회장 △전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 △전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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