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기술 패권시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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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4-06-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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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프트웨어 정의 'X"가 대세

  •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가 자동차의 미래, 전 세계 개발 경쟁

  •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가 제조의 미래

  •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유연한 변화 대응 및 신 비즈니스 모델 창출 가능

  • 자동차 산업 및 제조업의 세계 판도 좌우 전망 .. 국가적 대응 필요

주엽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세계는 지금 기술패권 시대다. 미국과 중국 간의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세계 패권 경쟁의 핵심이 기술에 있다는 의미다. 기술 트렌드를 선점하는 국가 및 기업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기술 전시회는 기술 경쟁의 치열한 각축장이자 협력장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소비자전자쇼)와 4월 중순에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하노버 산업박람회는 대표적 기술 전시회로서 세계 기술 트렌드의 중요한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도 각각 전시업체가 4000개를 넘고 참관인 수도 13만명을 훌쩍 넘어설 만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렇듯 중요한 의미를 가진 CES와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올해 동일하게 제시한 미래 핵심 트렌드는 AI(인공지능) 기반 ‘디지털화’와 ‘지속 가능성’이었다. AI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화’를 통하여 환경과 사회, 궁극적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결론이다. 이 핵심 트렌드와 함께 ‘소프트웨어 정의(Software Defined)’ 개념이 역시 공통적으로 제시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 소비자 대상(B2C)의 소비자 기술을 주로 다루는 CES에서는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Software Defined Vehicle)’가 주요 트렌드로 제시되었다. 기업 대상(B2B)의 산업 기술을 다루는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는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oftware Defined Factory)’,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Software Defined Manufacturing)’가 제시되었다. ‘소프트웨어 정의’라는 용어가 다소 전문적이고 생소하여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자동차나 공장 공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프트웨어 정의’란 쉽게 설명하여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종래와 같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정의·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만을 통해 정의·제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초 CES에서 부각된 자동차 및 모빌리티의 기술 트렌드는 단연 SDV이었다. 현대차,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회사들이 AI 기반의 소프트웨어로 정의하고 제어하는 SDV 로드맵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현재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자동차 중에서는 테슬라의 전기차가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에 가장 가까운 사례다. 소비자 입장에서 종래 자동차의 문제점은 신차를 사서 1~2년만 지나면 새로운 기능을 가진 다른 신형 자동차가 나오며 타고 다니는 차는 구형이 되는 불만일 것이다. 과거에는 신기능을 업데이트하려면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라 하드웨어도 함께 바꾸어야 되기에 결국 신차를 다시 사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신차를 사서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고도 사용 중인 자동차의 소프트웨어만 바꿔서 신기능을 구현하는 기술이 바로 SDV라 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를 위해 차량 내 수십~수백 개의 전자제어장치에 분산되어 있는 제어 기능을 중앙전자제어장치로 통합하고 이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무선 통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OTA(Over the Air)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여기에 취약해지기 쉬운 보안 기능, 기능 안전 등 소프트웨어 구조를 체계적으로 보완한 기술이 SDV의 핵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스마트폰은 이미 SDV보다 앞서 소프트웨어 정의 개념을 구현하여 사용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정의 휴대폰’이라 할 수 있다.
 
SDV는 현재 테슬라는 물론 현대차·기아, 도요타, 폭스바겐, 르노닛산 등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는 미래 핵심 트렌드가 되고 있다. SDV의 장점은 많다. 첫째로 OTA(무선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해 차량을 바꾸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신차와 같이 업그레이드하여 고객 만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둘째로 AI 및 데이터 기반으로 운전자의 드라이빙 경험 및 환경의 지속적 개인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역시 고객 만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셋째로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반으로 안전, 연비 제고는 물론 수많은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개발하여 추가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SDV는 종래 자동차 대비 획기적 경쟁력 제고가 가능해져 자동차 산업 판도를 바꿀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부각된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SDM)’,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DF)’도 기본 개념은 SDV와 대동소이하다. 기존 제조시스템, 특히 자동화된 제조시스템일수록 모델 변경 등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여서 이의 유연화가 당면과제다. 과거 대량생산 체제에서는 롯트량(Lot Size)이라 불리는 생산량 단위가 크고 생산 모델 변경이 빈번하지 않았으나 4차 산업혁명에 따라 개인화 및 맞춤화가 시대적 흐름이 되면서 업종 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롯트량이 작아지는 다품종 소량 내지 극다품종 극소량 생산이 대세가 되고 있다. 즉, 디지털 대전환(DX)을 통해 기업과 고객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기업이 고객 개개인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이를 만족시키는 개인화 및 맞춤화가 가능해진다. 미래 제조시스템에서는 이에 따른 기민한 모델 변경 등 변화에 대한 유연성 및 적응성이 글로벌 제조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이것이 바로 하드웨어의 변화 없이 또는 최소의 변화로 소프트웨어만 바꿔서 변화에 대응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SDM)의 요체다. SDV 경우와 같이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제조시스템의 새로운 기능의 지속적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는 건 물론이다.
 
올해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는 지멘스, SAP,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이 초저지연·초고속의 5G 통신 기반으로 제조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실시간으로 변경하여 개인화 및 맞춤화를 가능케 하는 유연 자동화 제조시스템을 제시하며 SDM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많은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포함한 AI와 데이터 기반으로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여 SDM의 고도화를 제시하여 이목을 끌었다.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DF)은 SDM을 구현하는 공장으로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 로봇,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가공 및 조립 장비, 센서, 액추에이터 등이 주요 구성요소다. 최근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톤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등 휴머노이드 로봇도 AI, 데이터, 소프트웨어 정의 기술의 융합으로 SDF 및 SDM을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SDF 및 SDM은 제조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개인화 및 맞춤화를 가능케 하는 제조시스템 구현 외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이라는 중요한 이점을 준다. SDM을 통하여 제조시스템의 서비스화인 SaaS 모델이 다수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이다. AI를 통한 기계장비 운전 데이터 분석으로 고장을 사전에 예측하여 예방하는 예지보전 모델, 기계장비를 가동 및 생산한 양만큼 장비 대금을 분할 지급하여 고정비를 변동비로 전환시키는 Pay-per-Part 모델, 실제 제조시스템을 운영하기 전에 디지털 트윈 기반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하는 가상제조 모델, 제조 데이터를 판매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데이터 모델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해진다. SDM 및 SDF도 향후 글로벌 제조업의 판도를 결정하는 트렌드로서 우리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및 지속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할 전망이어 국가적 대응이 시급하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바꾼다. 대한민국 기업 및 정부의 기민한 대응을 기대한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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