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의대 증원 반대' 집단행동의 정당성 판단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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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24-03-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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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최근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관련하여 국민들의 불편과 불만, 불안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으며, 그 정당성 논란이 뜨겁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정당한 것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집단행동의 이유가 정의로운 것이어야 하고, 둘째, 집단행동의 절차와 방식이 정의로운 것이어야 하며, 셋째. 집단행동의 결과 발생하는 환자들의 피해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통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를 포함한 국민과의 소통 없이 집단행동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둘째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집단행동의 결과 죽어가는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셋째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첫째 조건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의사 집단행동의 출발점인 의대 증원의 정당성 여부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헌법 제15조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일부 직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이 인정되고 있다. 공익성이 크고, 인력수급에 대한 국가적 관리가 필요한 직업에 대해서는 임용시험, 자격 제한 등으로 직업선택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무원, 교사,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이다.
의대 정원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은 서구의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이며, 그 기준은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적 판단이다. 이로 인하여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의대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하는 것은 이른바 주관적 사유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지만,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의대 정원의 증감은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수급과 관련된 것이며, 의사들의 직업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한 것이라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이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할 당시 변호사들의 반대와 관련하여 충분히 논의된 바 있다.
 
그러므로 의대 증원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의대 증원이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설득력을 가질 경우에만 정부의 의대 증원이 재고될 수 있다.
의사협회의 주장에 따르면 저출산으로 인하여 의사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며, 의대 증원은 10년 후에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의사 1인당 환자 진료율이 OECD국가 평균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의사 숫자의 단순비교로 의대 정원의 증가를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중요한 허점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효과가 동시에 나타날 때, 의료서비스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쪽은 후자이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고령화의 영향인지, 국민건강보험의 확대로 인한 것인지, 국민소득의 향상에 따른 것인지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의대 증원의 효과가 10년 후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증원하지 말자는 얘기는, 10년 이내에 세상이 망하지 않는 한, 타당하지 않다. 중장기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면 오히려 더 서둘러야 하는 것이 맞다. 똑같이 저출산 문제를 겪는 일본에서 의대 증원을 계속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사 1인당 환자 진료율이 높다는 것은 대한민국 의료서비스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열악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의대 증원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과거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재건 과정에서 도로와 각종 공공시설, 주택 등을 건설하면서 정확하게 수요예측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예측이 크게 빗나갔던 것이 주택수요였다. 출생률을 고려한 인구의 증감, 인구의 사회적 이동,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대해서까지 충분히 고려했지만, 생활양식이 달라지면서 1인 가구가 크게 증가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의료서비스 및 법률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과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웬만하면 병원 대신에 약국을 가고, 변호사를 찾는 대신에 사법서사를 찾던 시기와 선진국이 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이 기대하는 서비스의 수준은 계속 달라지고 있다. 더욱이 국민건강보험이 보편화되면서 기대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
물론 그로 인한 과잉진료 문제도 있고, 의료수가의 적정성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낮추겠다고 할 수 있을까? 과잉진료의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편을 국민들이 양해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서비스 수준을 낮추겠다고 하면 -IMF외환위기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서비스의 양적⋅질적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주장을 논거로 내세워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차라리 적절한 증원 규모에 대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편이 낫다.
다만, 의과대학의 현재 교육 역량을 문제 삼아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교육 역량 보완을 전제로 증원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또한, 그 판단은 전공의나 의대 교수들이 아니라 대학 당국에서 내려야 한다. 그동안 여러 대학들이 증원을 신청했던 것은 이런 고려 없이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왜 의사협회에서는 의대 교육의 부실을 우려하는 것일까?
일부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가 있다.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 사직을 감수한다고 말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결국 의대 교수들마저 국민과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집단행동의 이유도 정당하다고 볼 수 없고, 그 절차나 방법도 정당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찾기 어려운 이번 의사 집단행동이 도대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것이며, 환자들의 희생이 계속될 경우에 그 무거운 책임을 또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설마 환자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정부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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