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제13차 WTO 각료회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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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 J 인스티튜트 원장
입력 2024-02-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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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이번 주부터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제13차 WTO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다. 세계 무역이 각자도생의 분절화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이번 각료회의도 예년과 같이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선진국과 일부 경제 규모가 큰 개도국들은 자국의 이익 확보를 최우선에 두고 첨단 기술 개발과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뿌리면서 정작 이러한 보조금이 초래할 세계 무역의 왜곡에는 눈을 감고 있다. 개도국들도 지금까지 무역 개방의 이익이 대부분 선진국에 돌아갔다고 주장하면서 이번만큼은 개도국의 발전을 위하여 특별한 혜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니 서로 타협하고 절충하면서 합의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13차 각료회의에 눈길을 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이해와도 관계되면서 세계적으로도 나름 의미를 둘 수 있는 이슈가 이번 각료회의에서 논의되기 때문이다. 우선 전자적 전송에 대한 모라토리엄(세계적인 무관세) 연장 여부가 중요하다. 즉 지난 1998년 제2차 WTO 각료회의에서 인터넷 등을 통하여 거래될 수 있는 상품(에: 음악, 영화, 드라마, 전자책, 각종 게임, 소프트웨어 등 미디어 콘텐츠와 그 외 다양한 서비스 등)에 대해 한시적으로 수입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이 모라토리엄 결정은 매번 각료회의가 열릴 때마다 2년씩 연장되었다. 그동안은 모라토리엄 연장에 대해 회원국 간 별다른 이견 없이 순조롭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디지털 무역이 급격히 증가한 2010년대 중반 이후 모라토리엄에 따른 관세수입의 손실에 개도국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결국 2022년 6월 개최된 제12차 각료회의에서 모라토리엄 연장 여부에 대한 일부 개도국들의 반발로 나타났다. 당시 각료회의에서 많은 회원국의 연장 지지에도 불구하고 각료회의 막판까지 인도와 남아공 등 일부 국가가 모라토리엄 연장에 반대하였다. 여기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관세수입에 의존하는 개도국이 합세하면서 모라토리엄이 폐지될 위기에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절충을 통해 제13차 각료회의까지 연장하되, 13차 각료회의에서 모라토리엄 연장 여부가 합의되지 않으면, 3월 31일부로 자동 종료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따라서 이번 13차 각료회의가 모라토리엄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니 자연 그 결과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BTS를 포함 한류 바람으로 영화와 드라마, 한식 등에서 우리의 디지털 문화 콘텐츠 수출이 호기를 맞고 있어 모라토리엄 연장 여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인도 등과의 막판 절충이 기대된다.

 그다음으로 2차 수산 보조금 철폐 여부가 있다. 1차 수산 보조금(불법 어업이나 고갈된 어종의 어획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의미)철폐는 지난 12차 각료회의에서 합의되어 지금은 발효를 남겨두고 있다. 당시에도 논란이 심해 후속 협상으로 미뤄두었던 2차 수산 보조금(과잉어획이나 과잉어획 능력에 기여하는 보조금을 의미) 철폐 여부가 이번 13차 각료회의에서 결정된다. 합의 도출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동안 협상을 통해 많은 쟁점이 정리되었지만, 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 수준과 어업활동에 이용되는 강제노동과 관련하여 주요국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어 합의 도출을 쉽게 전망하기 어렵다. 만일 이번 2차 수산 보조금 협상이 타결되면 우리나라는 수산 보조를 많은 주는 10개국에 포함되어 보조금의 규모는 물론 그 용도, 영향을 받을 어종과 해당 어종의 고갈 상태, 어획 능력 등을 포함한 수산 보조 정책에 자세한 정보를 WTO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당연히 행정적으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수산 보조 정책의 운용이 WTO 회원국의 감시에 놓여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수산 보조 정책의 일대 개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원활화 복수국간협정의 WTO 법적 편입 여부도 우리의 관심이다. 투자원활화 협상은 WTO 전체 회원국이 참가한 다자협상이 아니라 관심이 있는 일부 회원국만이 참여한 소위 복수국간협상이다. 2020년 9월부터 우리나라와 칠레가 공동의장국으로 협상을 주도해 작년 7월 최종 합의를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약 120개국이 투자원활화 협정문에 서명을 마쳤다.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서명을 마친 투자원활화 협정문을 WTO의 다자규범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다룬다. 복수국간협상을 통해 마련된 협정문이기 때문에 아직은 WTO 다자규범은 아니다. 인도와 남아공이 WTO 전체 회원국이 승인한 협상을 통해 도출된 협정문이 아니기 때문에 WTO 다자규범으로 편입은 불가하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그 전망이 밝지는 않다. 다만 성격이 같은 서비스 국내규제 복수국간 협정이 인도와 남아공의 반대 철회로 조만간 발효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어 아직은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그 외 분쟁해결절차 개혁이 WTO 회원국 모두에게 중요한 이슈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상소기구 운용과 관련하여 미국과 그 외 국가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합의 도출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점점 그 위상을 잃어가는 WTO 다자체제가 그래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거대국가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그나마 대항해 볼 수 있는 곳이 WTO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WO 다자체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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