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과유불급' 윤-한 서천시장 화재현장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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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호 정치사회 부장
입력 2024-01-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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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한동훈 충남 서천 시장 정치적 만남

유인호 정치사회 부장
유인호 정치사회 부장

#2016년 12월 1일, 대구 서문시장에 박근혜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화재로 까맣게 불탄 서문시장에 박 대통령이 다음날 찾은 것이다. 당시 현장 분위기는 썰렁했다. 차에서 내린 박 대통령이 10여 분간 화재현장을 둘러 본 후 현장을 떠났다. 상인회 관계자 외에 일반 상인들과 시민들과는 접촉하지 않은 채 발길을 옮긴 것. 박 대통령 측에선 화재로 상심한 상인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현장 상황을 직접 눈으로 살펴본다는 조심스런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부 지역 상인들의 비난은 터져 나왔다.

그로부터 8년여 후인 2024년 1월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 윤석열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다. 전날 서천시장에 큰 불이 나 292개 점포 가운데 수산물동과 식당동, 일반동 내 점포 227개가 모두 소실됐다. 새까맣게 탄 잔해 위로 새벽에 내린 눈이 쌓이면서 화재 현장은 더욱 처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곧이어 서천시장 방문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 등장했다. 바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한 위원장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택했다. 언론의 관심은 화재 현장보다는 이들의 만남에 쏠렸다. 정작 중요한 화재 수습 대책이나 민심 탐방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번 서천시장 회동은 정치적인 의도성이 짙다. 회동 며칠 전부터 이어온 윤 대통령과 위원장 사이에 발생했던 '갈등설'을 화재 현장 동행으로 봉합 국면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정치적인 행보로 해석되는 탓이다. 총선 공천 갈등,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등의 갈등이 계속될 경우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에서 패배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자 이 같은 이벤트가 급조됐다는 정치권 안팎의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의 해명은 정치권의 해석과는 달랐다. 대통령실은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은 현장을 살피고 상인들을 면담했다. 현장에 나온 150여 명의 피해 상인들은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를 표하고 눈물로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은 서천 방문을 통해 정치적인 목적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실 사진들 상당수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과의 만남을 담았다. 대다수 언론 보도의 주요 내용 역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서천 시장 방문 이후 상인들과의 공식적인 만남 없이 한 위원장과 같은 기차를 타고 상경길에 올랐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민생 탐방을 위해 전통시장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6일 윤 대통령이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방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따른 지역 민심을 달래고자 한 행보였다.

문제는 서천 시장 방문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민생에 대한 진심이 국민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과의 갈등설을 잠재우기 위해 과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민생 탐방을 위한 서천 시장 방문만 하고 한 위원장과 정치적인 만남은 서울에서 했어야 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지적이다.

'중용'(中庸)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이번 '윤-한 서천 화재 시장 회동'은 오히려 실행하지 않았어야 했다. 통치자나 정치인의 첫 번째 의무는 정치적인 목적 달성보다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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