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임계점 넘어선 '증오의 정치', 어떻게 막을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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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헌법학)
입력 2024-01-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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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헌법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헌법학)]


진영 갈등이 과거 망국적이라 일컬어지던 영호남 갈등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계속되더니, 결국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갈등과 분열, 증오의 확산으로 이어지던 대한민국 정치의 모순들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초산 테러,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커터칼 테러 등이 있었으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테러가 반복된 것은 민주화 이후 최초이다.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 속에서 축적된 증오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라면, 유사한 테러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증오에서 비롯된 테러를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증오의 원인을 밝히고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테러를 할 정도로 정치인에 대한 증오가 쌓였을까? 그것도 해방 직후 백범 김구나 몽양 여운형, 고하 송진우 등의 암살범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지만, 이재명 대표와 배현진 의원에 대한 테러 용의자들은 평범한 시민과 학생 아닌가?
일반 시민들이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가한다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상황임을 우리 모두가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 소수 테러리스트의 범죄를 감시⋅통제하는 것과 일반 시민들의 절망과 분노를 통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우처럼 국가의 일부 기능이 심각하게 마비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증오의 원인이 정치인들 자신에게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백범 김구나 몽양 여운형 등이 암살당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국민들은 이들의 암살에 슬퍼했고, 암살범의 처벌을 강력하게 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야 정치권에서는 증오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끝내려는 움직임이 있는가? 결국 말로만의 비난일 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어떤 전략이 유리할 것인지만 계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여야의 강성 지지층 중에 상대 진영에 대한 테러를 환영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까?
진정으로 증오의 정치를 막고자 한다면, 여야의 지도부에서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첫째, 여야의 지지층에 대해 정치 테러가 어떤 것이며,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를 보다 강하게 설득해야 한다. 막연하게 정치 테러를 규탄하고, 증오의 정치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얼마나 정당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예컨대 정치 테러가 빈번해지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후퇴할 경우에는 오히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그러했듯이 히틀러의 나치당과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집권할 수 있고, 이는 곧 대한민국의 붕괴라는 점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성 지지층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믿는 정당과 지도자를 위해 순교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둘째, 말로만의 증오 정치 청산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아무리 총선 직전이라고 하지만, 선거가 왜 민주주의의 축제이고, 꽃이라 일컬어졌던가? 페어 플레이와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전쟁과도 같은 선거는 이제 그만 해야 한다. 과열된 선거 경쟁의 후유증을 계속 반복하면서 적대적 대립과 증오를 키우는 정치가 오늘의 사태를 가져온 원인이다.
당장 눈앞의 현안에 대해서부터 대화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편에서는 여야 모두 증오의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적용을 앞두고 여야가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이 국민들 눈에는 어떻게 비치겠는가?
셋째,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개혁하여 분권과 협치가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지지하고, 야당은 무조건 정부의 발목을 잡는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여당과 야당의 정책 경쟁이 실질화되어 서로가 국민들을 위한 더 좋은 정책의 개발에 골몰할 때, 증오의 정치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개혁이 단기간에 성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더 늦을 뿐이다. 지금까지 행하지 않은 모든 일들의 경우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른 때이다.
 
정치권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면, 국민들이 이에 화답할 것이다. 다만, 그 효과가 즉각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동안 세계적으로도 정치권의 갈등과 분열이 증오의 정치를 낳았고, 그로 인하여 국민들 사이에 분열이 심각해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의 분열과 대립으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국가 내의 민족 갈등이나 종교 갈등으로 인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우리의 경우 민족 갈등이나 종교 갈등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정치권에서 시작된 증오의 정치이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러한 증오의 감정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증오는 때로 매우 강력한 힘으로 보인다. 과거 ‘태극기 부대’가 그러했고, 최근의 ‘개혁의 딸’이 그렇다.
그러나 이는 파괴적인 힘일 뿐이고, 생산적인 힘이 아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으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정치,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하는 데, 이러한 증오의 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미 쌓여 있는 증오의 감정을 떨쳐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를 조속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추가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며, 서둘러 대책이 마련되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여기서 더 늦게 되면, 일부 급진주의자 세력이 오히려 강화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 증오의 감정을 쌓아온 국민들이 갈 곳은, 이들을 받아들여 줄 곳은 급진주의 세력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등 서구의 여러 국가에서도 급진주의 정당의 세력 확장은 이러한 증오의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증오의 정치를 얼마나 빨리, 제대로 청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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