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기의 핀스토리] ELS 사태와 추락한 은행 신뢰…"내 자산 안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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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기 기자
입력 2024-0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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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지수 '반토막'에 올 들어 1000억원대 원금 손실

  • KPI 수정 등 대응에도 금융소비자 신뢰 회복 '요원'

서울 시내에 있는 주요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시내에 있는 주요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새해 벽두부터 홍콩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팔린 H지수 기반 ELS에서 지난주(8~12일)에만 1067억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일까지 5대 은행에서 만기가 도래한 H지수 기반 ELS 원금 약 2105억원 중 1038억원이 상환됐다. 전체 손실률은 50.7%으로 집계됐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이다. 일반적으로 3년을 만기로 하고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원금과 수익이 조기 상환된다. 그러나 만기가 도래했을 때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고꾸라진 H지수…상반기 5조원대 원금 손실 우려
H지수 기반 ELS 중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3년 전인 2021년 판매돼 만기가 도래하는 것들이다. 2021년 2월 1만2000를 웃돌던 H지수가 이듬해 10월 5000 밑으로 떨어지는 등 급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H지수는 5769로 손실 발생 구간에 머물러 있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전체 금융권에서 판매된 H지수 기반 ELS 상품 잔액 19조3000억원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를 15조4000억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올해 상반기에 만기 도래하는 규모가 10조2000억원이다. H지수가 현재 수준에 머무다면 올해 상반기에만 5조원대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ELS는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대신 기대수익률이 높은 ‘고위험 고수익’ 상품으로 구분된다. 투자자들이 관련 상품에 가입할 당시 원금 손실 가능성을 알고 투자에 나섰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당국도 분쟁 민원을 처리할 때 판매원칙을 실질적으로 준수했는지 여부와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을 함께 고려할 방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ELS가 본인 책임하에 가입하는 금융투자상품이므로 투자자들도 각자 투자에 일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당연히 있다”며 “상품 자체가 사기성인 것들과 ELS를 똑같이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H지수 기반 ELS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혹은 무리한 영업이 존재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은행에서 핵심성과지표(KPI) 상 ELS 등 고난도 상품 판매에 높은 배점을 준 게 확인되면서 무리한 영업이나 중도 해지 거부를 직·간접적으로 부추겼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핵심은 금융사들이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 등 법규를 준수했는지, 소비자 보호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 등이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들이 8만6000계좌, 5조4000억원 규모에 달했다는 점은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영업 과정에서 고객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아 생겨난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또 지난달 설치된 H지수 ELS 대응 태스크 포스(TF)를 중심으로 △검사 △분쟁조정 △제도개선 검토 등 절차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사진아주경제DB
[사진=아주경제DB]
 
KPI 수정 나섰지만…또다시 추락한 은행 신뢰도
금융소비자들은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이어 ELS까지 문제가 터지자 불안해하고 있다. 은행을 믿고 상품을 샀는데 이 정도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신뢰도에 의문을 보내는 시각도 존재한다.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주가가 절반 이상 떨어져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는 설명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미 2021년부터 H지수에 부정적인 기류가 확인됐음에도 은행 수익 또는 개인의 실적을 위해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데 분노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여론이 싸늘해지고 금감원이 강경 대응에 나서자 은행권은 KPI를 수정하는 등 발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권 내부적으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KPI 개선은 고령·초고령 투자자에게 고위험 투자상품을 판매하더라도 실적을 인정하지 않거나 고객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ELS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성과지표를 깎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원으로서는 사실상 ELS를 판매하려는 유인이 사라지는 수준의 변화”라며 “앞으로는 ELS를 가입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절차를 도와주는 수준에 그칠 것 같고 실적은 다른 방향으로 채우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인 기류가 지배적이다. 은행권이 DLF 이후에도 ‘고객 신뢰 회복’을 외치면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선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KPI는 언제든지 다시 바뀔 수 있으므로 금융당국 차원에서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8일부터 H지수 기반 ELS 판매량이 많은 금융사부터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금감원과 금융권이 모두 불확실성 장기화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현장검사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H지수 기반 ELS 사태는 이르면 1분기 내에 최종 결론이 날 전망이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금융소비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DB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금융소비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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