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G9 가입 새해 국정목표로 추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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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교수
입력 2024-01-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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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교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노력이 처절한 실패로 끝난 지금 대한민국의 새로운 외교 목표는 실종된 듯하다. 과거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할 때처럼 정부가 앞장서고 전 국민이 똘똘 뭉치면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엑스포 유치가 무위로 끝나자 국가적으로도 허무한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듯하다. 항상 새로운 국정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전 국가가 매진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으로서는 좀 생소한 풍경이다. 새해를 맞는 이때쯤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우리를 추스르고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목표가 G9 가입이라면 어떨까?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서 의미 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 전 국민을 다시 한번 하나로 모으고 우리의 모든 역량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자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임인 G7(group of 7)에 한국과 호주를 추가시켜 G9을 만들자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기회를 잡을 필요가 있다. G9의 회원국이 된다는 것은 한국이 더 이상 강대국이 정한 국제 질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참여한다는 의미다. 의미를 따지자면 엑스포 대회를 유치하는 것보다 몇배, 몇십배 값지고 중요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G9 가입이 이제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며 비서실장을 지냈던 로널드 클레인(Ronald Klain)은 얼마 전 한 기고문에서 한국과 호주를 포함한 G9 구성이 매우 필요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신흥 경제국 5개국들의 모임인 브릭스(BRICS)가 최근 6개의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여 권위주의 국가 연합 세력을 확장하는 데 맞서 자유민주주의 선진 국가들도 그 세력을 넓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G7을 G9으로 바꿔야 하고 거기에 가장 합당한 국가가 한국과 호주라는 주장이다.

사실 50년 전 냉전 시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자유 민주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G7은 이제 그 존재감이 크게 퇴색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7개국의 경제력은 30년 전 전 세계 경제의 70%를 차지했지만 여타 신흥국의 부상으로 지금은 44%에 불과하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방 국가로 구성되어 대표성도 의심받는다. 반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시작된 BRICS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 이집트,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를 새로 가입시켜 모두 11개의 인구 강국, 혹은 신흥 경제국의 집합체가 되어 G7을 위협한다. 여기에 이념과 가치에 있어 두 모임은 크게 대립한다. 전자가 권위주의, 혹은 왕정 국가가 주축을 이루는 반면 후자는 자유민주주의 신봉 국가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호주의 G9 참여는 갈수록 위축받는 자유민주주의 연합에 큰 힘을 보탤 수 있다. 양국 모두 G7과 BRICS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력을 자랑한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가 하나씩 추가 되어 G7의 지역적 대표성도 확장한다. 특히 한국은 G7의 근간 이념인 자유 시장 경제를 채택해서 빠른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모범 국가이다. 갈수록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즉 개발도상국들이 권위주의로 경도되는 상황에서 G7의 정당성을 과시할 수 있는 최적의 사례다.

또한 한국의 추가는 최근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격화되는 동서 간 경제 안보 대결에서 G7에 큰 보탬이 된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우주 기술, 인공 지능 등 분야에서 기술 협력과 공급망 정비에 필수적인 국가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칩 동맹에는 대만과 아울러 미국, 일본,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거기다가 최근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대중 문화와 이에 따라 부상하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고려하면 한국의 참여는 당연해 보인다.

이런 점으로 인해 한국의 G9 가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 한국, 러시아, 나토(NATO) 미국 대사를 지낸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과 호주의 가입이 “오늘날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많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 이전에도 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호주, 인도, 혹은 러시아를 포함한 G10, 혹은 G11을 제시한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고 인도는 모디 총리 집권 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점으로 볼 때 역시 가장 강력한 후보는 한국과 호주이다.

그러나 장애물은 여전하다. 과거 G11이 논의될 때 독일, 일본 등은 공식, 비공식으로 이를 반대한 바 있다. 트럼프가 한때 회원국이었다가 축출되었던 러시아를 다시 받아들이고자 했기 때문에 특히 반대가 컸다. 한국 참여에 대해서도 일본은 탐탁지 않았다. 유일한 아시아 회원국으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상당히 개선된 한·일 관계를 고려하면 일본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 특히 중국, 러시아, 북한이 최근 군사 경제적으로 밀접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미국, 일본의 삼각 안보 및 기술 협력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설사 G9 가입이 좌절된다 해도 국정 목표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가입을 위해서는 한국이 좀 더 체제를 개혁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낙후된 제도나 규제를 철폐하고 기존 G7 국가 수준의 선진 법 제도를 갖추는 것이 가입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목표로 삼아 모두가 한마음으로 정진한다면 엑스포 유치 실패의 허무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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