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통역' 법정 진술 뒤집히기도…"체계적 제도·통역사 처우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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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성 기자
입력 2023-12-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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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각장애인 재판청구권 등 침해 의견 제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청각장애인 재판에 제공되는 수어 통역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확대되고 있다. 여전히 수어 통역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고 통역사 처우 문제로 법정 통역의 전문성·신뢰성도 떨어질 수 있어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방대한 법률 용어 표현할 어휘 충분치 않아"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근 유관 단체 3곳과 법정 수어 통역 현황에 관한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실무자 의견을 청취했다. 

이번 간담회는 법정 수어 통역사의 처우와 전문성이 개선되지 않아 청각장애인의 헌법상 재판청구권과 평등권이 간접 침해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에 따라 마련됐다. 
 
법원은 지난 2020년 '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용어 수어집' 발간을 시작으로 2021년 '민사절차 수어집', 지난해 '가사절차 수어집'을 발간했고 올해는 '행정절차 법률용어 수어집'도 펴낼 예정이다. 

하지만 방대한 법률 용어를 수어로 통역하기에는 아직 어휘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일부 법률 용어 수어 표현은 교재 상호 간에도 일치하지 않거나 개발된 수어 표현이 사용자의 언어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신명순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청각장애인 재판 수어 통역의 경우 통역사의 전문성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며 "다양성이나 표현이 부족한 수어로 추상적인 법률 용어를 담아내기는 힘들다. 법원이 더 구체적인 표현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인 정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재판은 일반 재판보다 더 정밀한 사전 준비가 요구되지만, 실무에서는 이런 의견이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사 재판과 관련해 수어 통역을 10여 차례 진행했다는 한 수어 통역사는 "재판 전에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이 사람의 언어습관은 어떤지를 사전에 충분히 이해하고 통역에 나서야 하는데, 현재 주어지는 사전 면담 시간은 너무 짧아 정확한 통역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선진국, 법정 수어 자격·교육 제도 운용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각장애인이 법정에서 이전 진술 내용을 번복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신 복지사는 "통역사가 전달한 내용에 대해 다음 기일이나 재판에서 청각장애인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말을 뒤집는 경우가 있었다"며 "최근에는 정말 중요한 쟁점의 경우 농통역사를 이용해 다시 한번 중개 통역을 거치고는 있다. 그러나 체계적인 교육이나 교재 없이는 한계가 있고 소요되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수어통역 등에 관한 예규'를 뒤늦게 도입했지만, 법정 수어 통역인에 대한 전문적이고 공식적인 교육이나 인증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요 선진국이 법정 수어와 관련한 자격과 교육 과정을 마련한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법정수어통역 전문가 자격(SCL)을 두고 서류심사와 필기·실기시험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영국 역시 등록 수어통역사제도(RSLI)를 통해 법률 분야 수어 통역을 전문 통역 분야로 규정한다. 호주도 전문 수어 통역 섹션으로 '일반사회와 법률' 과정을 두고 전문통역사 인증제도(PI)를 운영 중이다.
 
약 15년간 법정 수어 통역을 담당해 온 한 전문가는 "통역사를 임명하는 다른 언어와 달리 법정 수어 통역은 여전히 통역사들이 법원의 공고를 보고 신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체계적인 자격이나 인증 제도가 없다 보니 자격증을 보유했는데도 실제 법정에서는 수어 통역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평가했다.
 
법정 통역료 30분 기준 8만원…"비현실적"
재판 수어 통역에 대한 사법 당국의 낮은 인식과 저조한 대우도 수어 통역의 신뢰를 낮추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법정 수어 통역의 경우 다른 일반 수어 통역과 비교해 수어 통역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업무란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어통역센터에 따르면 30분 기준 세미나·토론회의 기본 수어 통역료는 20만원, 기념식·뉴스·선거·녹화·드라마·다큐는 기본 30만원으로 책정된다. 반면 법정 수어 통역료는 같은 시간 8만원에 불과해 일반적인 수어 통역사보다 통역료가 훨씬 낮다. 
 
신 복지사는 "일반적으로 외부 통역사들이 기본적으로 활동하는 수당과 많이 차이가 나고 법적 리스크도 있다"며 "법원에서 배정해 놓은 금액 자체가 워낙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이런 점에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법원이 법정 수어 통역의 교육·인증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면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0일 '법정수어통역 교육·인증 제도 도입 방안 연구' 용역을 입찰 공고했다. 이를 통해 법원은 표준화된 법정 수어 표현 교육안을 마련하고 법정 수어 통역인 양성을 위한 교육·인증평가 도입을 위한 연구에 돌입한다. 법정 수어 통역료 현실화 방안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방침이다.
 
서울변회도 법정 수어 통역 처우 등을 개선하도록 권고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여전히 법정 수어 통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견이 상당하다"며 "최근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법원에 관련 의견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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